하나님의 중매로 결혼은 했지만 어머니에게는 영 마땅찮은 며느리감이었다. 그래서 결혼하자마자 며느리에 대한 어머니의 구박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집안이 넉넉치 않지만 운동을 잘해 학자금을 대주는 서울체육중·고교를 다녔다. 배구를 하여 실업배구 선수로 활동하다 은퇴하고 예수님을 만나 기도하던 중 나와 결혼했는데 시집 오면서 예단을 거의 해오지 못했다.
어머니는 울분을 참지 못해 툭하면 대구에서 서울 신혼집으로 쳐들어와 내가 출근한 후에 아내를 무릎꿇려놓고 온갖 험담을 해댔다. 특히 아내의 아킬레스건인 경제적 문제를 집요하게 건드렸는데 예단이 부족하여 친척들에게 면이 안섰다, 어떻게 내 아들을 꼬드겼길래 몸만 달랑 왔느냐면서 자존심을 짓뭉개고 속을 뒤집어놓았다. 특히 어머니는 절에 다녔는데 예수 믿는다는 것 때문에 더 미워했다.
얼마나 쥐잡듯이 몰아세웠는지, 그렇게 영력이 쎈 아내도 어머니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무서워하였다. 마치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 선지자들을 죽이고도 이세벨이 자기를 죽인다고 하자 식겁해서 도망쳤듯이 아내도 어머니 앞에서 꼼짝을 못했다. 그런데 내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어머니는 천사로 싹 변해 웃음가득한 얼굴로 나를 대했다.
게다가 누님도 가끔 '내 동생에 비하면 너는 너무 부족하다. 더구나 시집오면서 별로 가져오지 못했으니 평생 빚을 갚는다는 심정으로 살아라'면서 말로 아내의 마음을 후벼팠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 사이에서만 벌어지고 있어서 전혀 몰랐는데 내색을 안하던 아내가 결국 참다참다 못해 울면서 이혼하자고 얘기하길래 그제서야 내막을 알게 되었다.
정신이 버쩍 들었다. 아내가 나 하나 믿고 우리 집안에 들어왔는데 내가 아내를 보호하지 않고 이대로 내버려뒀다간 큰일나겠다 싶었다. 우선 어머니한테 '자식 홀애비되는 꼴 안보려면 다시는 서울에 올라오지 마라'면서 아내에 대한 접근금지령을 내렸다. 그리고 누님한테는 '가정파괴범이 되기 싫으면 올케한테 직접 얘기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나한테 해라. 들어보고 옳다 싶으면 내가 전달하겠다'고 윽박질렀다. 어머니와 누님이 강력 반발했지만 내가 하도 쎄게 나가니까 차츰차츰 아내에 대한 핍박이 사그라들었다.
그 후 누님이 예수믿었고, 조금 더 있다가 부모님도 예수님을 영접하였다. 예수 믿으면 좀 바뀔 줄 알았는데 며느리에 대한 독설은 여전했다. 특히 형수님이 카톨릭이었는데 얼마나 드센지 명절 때 대구에서 모이면 어머니도 말빨이 딸려서 어쩌지를 못했다. 대신 동쪽에서 빰맞고 서쪽에서 분풀이하듯 아내에게 모든 분노를 쏟아내었다.
결국 아내가 폭발했다. 더 이상 대구에 내려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나만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냉전기를 거치는 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 대구에서 못살 것 같아 서울 우리집으로 모셨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기세등등하던 어머니가 아버지가 소천하시자 180도 바뀐 상황에서 살얼음같은 며느리 눈치를 보다가 3주도 못 버티고 대구 가서 혼자 살겠다고 기가 팍 죽어 내려가셨다.
80대 노인네가 혼자 살다가 결국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오른쪽 대퇴골이 부러졌다. 대구카톨릭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재활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시켰다. 그런데 음식이 부실하고 간병인 1명이 환자 10명을 공동간병하는 실정이라 어머니가 불편해서 견디지를 못했다. 결국 치매 초기와 유사한 섬망증세를 보이며 정신이 왔다갔다 했다.
안되겠다 싶어 서울로 모셔와 집에서 가까운, 시설 좋은 요양병원에 입원시켜 재활치료를 하였다. 매일 퇴근 후 어머니에게 들러 말상대를 해주었다. 그 와중에 무릎이 악화되어 인공관절수술까지 하는 바람에 재활치료 기간이 6개월여로 더 길어졌다. 휠체어에 올라탈 정도가 되자 매주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모셔와 주일 예배를 같이 드린 후 다시 병원에 보내드렸다.
그런데 아내의 표정이 영 떨떠름했다. 얘기도 않고 어머니를 집으로 모셔오는 것이 불만이었던 모양이다. 그동안 시어머니한테 당한 게 얼마나 한이 서렸으면 저럴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병들고 늙으신 시어머니를 홀대하는 아내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어머니를 외출시켜 예배드린 후 집에 들어왔는데 아내가 '이 집이 당신만의 집이냐'며 어머니를 데려오지 말라고 했다. 그 말에 나도 화가 나서 결혼하고 처음으로 대판 푸닥거리를 한 판 했다.
밤에 기도하는데 가슴이 꽉 막혔다. 억지로 '하나님, 제발 아내가 마음을 풀어 어머니를 좀 받아들이게 해주세요. 그리고 이 난국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지 모르겠으니 도와주세요'라며 간절히 기도했다. 정말 난감했다.
다음 날 출근해서 짬을 내어 성경을 읽는데,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이게 하나님의 응답이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지혜를 구했다. 나름대로 작전을 짠 다음 아내에게 밖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전화했다. 어제의 앙금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아내가 시큰둥하게 그러라고 했다.
식당에서 저녁 먹으면서 어머니를 좀 받아들이라고 아내를 설득했다. 아내는 나의 태도가 문제란다. 어머니가 아직 나와 분리되지 못하고 너무 밀착융합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버지 소천 후에는 더 심해져서 나를 남편처럼 의지하고 있으니, 단호하게 대해서 어머니 스스로 살 수 있도록 독립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늙어빠져 의지할 데 없는 노인네를 어떻게 독립시키느냐, 자식된 도리로서 모셔야 한다고 맞섰다. 아내는 물러서지 않았고 여전히 어머니를 모실 생각이 없었다.
잠시 침묵하다가 식당의자에서 내려와 아내 앞에 무릎을 탁 꿇었다. '당신, 도대체 왜 그러느냐? 이제는 어머니를 받아들일 때가 되지 않았느냐? 우리가 바뀌어야지 어떻게 노인네가 바뀌기를 바라느냐? 제발 어머니를 용서하고 같이 모시자'라고 간청했다. 갑자기 무릎을 꿇으니 아내가 당황해서 '왜 그래? 쇼 하지 말고 일어나!' 하며 주위 눈치를 살폈다.
계속 무릎꿇고 말했다. '알았다. 정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당신이 시키는대로 하겠다. 어머니를 데려오지 마라, 어머니한테 가지 마라면 그대로 하겠다'... 아내가 혼란스러운지 말을 못했다. 다음날 아내한테서 장문의 문자메시지가 왔다. '무릎 꿇으면서까지 부탁하는데 생각을 많이 했다. 아직은 어머니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기다려달라'는 내용이었다.
하나님이 응답으로 주신 말씀은 창세기 21:12 이었다. '사라가 본즉 아브라함의 아들 애굽 여인 하갈의 아들이 이삭을 놀리는지라 그가 아브라함에게 이르되 이 여종과 그 아들을 내쫓으라 이 종의 아들은 내 아들 이삭과 함께 기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므로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그 일이 매우 근심이 되었더니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창21:9~12)... 우째 그리 우리집 상황과 똑같은지...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 구절은 여자들이 요한복음 3:16 다음으로 좋아한단다!
아내와 화해한 날 밤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또 하나의 감동을 주셨다. '어머니에게 하는 것의 3배를 아내에게 해 주어라'... 다음날부터 바빠졌다. 부엌 근처에도 안가던 내가 가끔 설겆이도 하고 세탁한 빨래를 널고 마른 빨래를 걷어 챙겨넣고 청소기도 돌리고 분리수거도 했다 (그러나 아직도 전기밥솥에 밥앉히는 것이나 세탁기 돌릴 줄은 모른다). 이 정도도 나에게는 혁신적인 변화이다.
이번 설날에는 마나님께서 대구에 동행했다! 이제는 마음이 풀렸는지 어머니에게 엄청 살갑게 대했다. 결혼 이후 기나긴 고부간 갈등의 터널 끝이 이제는 조금 보이는 듯하다. 고부갈등에는 돌부처도 돌아앉는다는데 하나님은 명쾌한 말씀으로 해결해주셨다. 결국 해법은 중간에 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남정네 여러분! 고부갈등에서는 무조건 아내 편을 드시오. 마누라한테 잘 해 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요!!!
Epilogue : 지금까지 나의 삶을 주관하시고 희한하고 기똥찬 방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앞으로도 선하신 손길로 나를 빚으시고 당신의 도구로 들어써주실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