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우울한 한 주였습니다.
집안 여러 가지 일들도 제대로 풀리는 것도 없는 차에 결정적으로 준비하는 드라마가 내용이나 완성도에 관계없이 방송시간대의 문제로 편성여부도 불확실한 지경에 놓여 있습니다. 이렇게 힘들게 드라마에 매달려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으로 내가 연출을 못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에이 썅, 포기해버릴까...하지만 저는 알았습니다. 며칠 내로 하나님이 내게 뭐라 말씀하실 거다....
지난 토요일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보다가 나는 하나님이 제게 하는 말씀을 발견하였습니다. 파이는 인도에서 동물원을 하던 아버지가 동물원이 망하면서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넙니다. 가족이 탄 화물선은 푹풍을 만나 파이를 제외한 모두가 배와 함께 침몰하고, 파이는 간신히 보트 하나에 올라타는데 거기에는 뱅갈산 호랑이가 있습니다.
참 갑갑하지요. 호랑이와 한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넌다...
파이의 어려움을 이야기하는데 긴 이야기가 필요없습니다.
호랑이와 한 배에 타서 항해하는 것만 해도 죽을 지경인데,
파이는 폭풍우를 만나서 급기야는 배에서 떨어져 바다에 빠집니다.
이 영화를 저는 3D영화로 보게 되어서 파이가 호랑이와 살면서 겪는 어려움이나 폭풍을 만나 고생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느끼며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고생을 보면서 차라리 파이가 저기서 죽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안락사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저도 꼴이 드라마 피디라고 영화 감독을 생각하니 파이가 죽어서는 절대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중간에 죽으면 안되잖아요....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파이는 그 영화감독이 의도했던 데까지 살아 남아야 합니다. 그것이 영화주인공의 의무입니다. 그건 선택이 아닙니다. 일단 주인공이 되기로 한순간 그는 자신의 선택범위는 극히 좁아집니다.
이크, 이건 제가 선택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제가 까부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서 49장 15절)
감독 하나님께서 계획하신대로 저는 무대에서 움직여야 합니다.이렇게 저를 일으킨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는 저의 장애에 대해서도 새로운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파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 제게 장애는 뱅갈산 호랑이 리차드 파커였습니다.
장애는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삶에 목표의식을 심어주었고,
언제나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우, 장애! 반갑다 친구야!)
<에반 올마이티>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화 1
2000년 교통사고후 기적적으로(이건 제 말이 아닙니다. 의사들은 모두 말했습니다. “저 환자는 살아날 수 없으며, 살아난다해도 휠체어에서 일어설수 없다 ”) 살아난후 저는 저의 삶에서 영광스러운 일이 빵빵 터질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살려놓으셨으니 내가 쓸모가 있어서일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이 쓰신다면-나의 삶은 얼마나 강렬할 것이 될 것인가...
그런데 그런 기대는 10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드라마 연출은 아예 맡겨지지 않았고, 영화는 연출 계약까지 하고, 계약금이 회사로 입금되었으면서 도중에 엎어졌습니다.뮤지컬 연출기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긴 연습기간을 거쳐, 춤, 노래, 대사 가 모두 완성되어 무대에 오르기만 하면 되는 순간, 무대가 서는 날 제작자는 뮤지컬 포기 선언을 하였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하나님 이거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이렇게 될 걸 왜 살리셨습니까? 그때 그냥 죽이시지 왜 살리셔서 이런 수치를 제게 주십니까?” 그때 보게 된 영화가 <에반 올마이티>였습니다. 저는 그영화를 보면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 영화에서 하나님으로 나오는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성공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성공을 주실까 성공할 기회를 주실까? 사랑을 달라고 하면 하나님은 사랑을 주실까 사랑할 기회를 주실까?”
예, 그 말에 저를 돌아보니 기회는 쉬지않고 제게 쏟아졌었음을 보았습니다.
아, 하나님! 저는 목이 곧은 짐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