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터 위에 단을 세우다 / 스 3:1-6 |
2022.5.8. |
맞이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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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우리 공동체는 ‘한 사람처럼’ 움직이고 있습니까?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무엇입니까?
구원의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옵니까?
함께 기도하기 |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그 터 위에 단을 세우다 / 스 3:1-6 |
2022.5.8. |
들어가며
성전 재건을 위하여 귀환한 사람들은 각자의 성읍에 잘 정착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일곱째 달(유대력 7월)이 되었을 때, 그들은 옛 성전이 있던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 한 사람처럼
유대력의 일곱째 달에는 중요한 절기들이 몰려 있습니다. 나팔절, 대속죄일, 초막절이 모두 그 달에 속해 있습니다. 이 일곱째 달에 예루살렘 근방에 흩어져 있던 1차 귀환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모였습니다. 성경은 그들이 ‘일제히’, 더 정확하게는 ‘한 사람처럼’ 모였다고 말합니다. 먼 길을 돌아와 황폐해진 터전을 다시 일구는 일만도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위해 모인다는 것은 매우 힘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한 사람처럼 한 마음으로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일을 위해 모였습니다.
교회 공동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지만, 예수님 한 분만을 그 머리로 모시고 있는 한 몸입니다. 자기의 판단과 기준, 생각과 견해를 내려놓는 것이 전제 되지 않으면 한 몸,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없습니다. 개인의 선택과 자유만이 중요시되는 풍토 속에서 공동체로 살아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 앞에서 한 사람처럼 움직이기 위해서는 결단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합니다.
2. 예배가 먼저다
왜 이들은 자신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예루살렘으로 모였을까요? 예배(제사)를 위해서입니다. 그들은 무너졌던 제단을 복원하고, 그 위에서 번제를 다시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율법을 따라 제사를 회복시켜 나갔습니다. 특별히 성경은 이들이 이 기간에 초막절을 지켰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초막절은 초막 생활을 통해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들은 첫 초막절을 지키면서,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절기가 지켜지고 제사가 드려진 때는, 아직 성전 지대도 놓아지기 전이었습니다. 이들의 우선순위는 성전 건축 자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성전 건축 자체가 아니라 예배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곳에 부르신 이유라는 것을 그들은 깨닫고 있었습니다. 일곱째 달에 시작된 제사를 준비한 일꾼들의 명단 또한 그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포로귀환과 성전 공사의 지도자로는 다윗의 후손 스룹바벨이 가장 먼저 거론되었지만,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 자체에 있어서만큼은 제사장 예수아가 책임 있는 인물로 가장 앞에 기록됩니다.
우리의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구원하신 것도, 또한 바벨론의 포로들을 다시 자유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의 회복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슬픔과 어둠을 물러가게 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깊은 확신과 소망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예배입니다. 오늘날 세련된 신앙생활을 말하며, 예배를 경시하는 분위기가 있지는 않습니까? 코로나 기간의 어려움으로 인해, 예배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가벼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