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자의 하나님 / 마22:23-40 |
2021.11.7. |
맞이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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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성경을 알지 못해서 방황한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부활을 믿는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어떠할까요?
함께 기도하기 |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산 자의 하나님 / 마22:23-40 |
2021.11.7. |
들어가며
바리새인의 제자들과 헤롯당원들이 물러간 자리에 사두개인들이 나아 왔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들은 부활에 관한 곤란한 문제를 만들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합니다.
1. 성경과 하나님의 능력을 모르는 사람들
사두개인들은 모세 율법 중에서 계대혼인법을 들고나왔습니다. 신명기 25장 5-6절에 따르면, 혼인한 남자가 아들이 없이 죽는 경우, 그 형제 중 하나가 죽은 자의 아내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얻은 첫아들이 죽은 형제의 이름을 따르도록 하여, 대를 이어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남편을 잃은 여인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이 율법을 근거로 하나의 상황을 가정합니다. 일곱 형제가 있었는데, 이 형제들이 연속적으로 죽으면서 계대혼인이 여섯 차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 형제와 아내까지 모두 죽고, 후에 이들 모두 부활하게 된다면 이 여인은 누구의 아내라고 하여야 할까요? 사두개인들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만들어, 부활이 없다는 것을 예수님께 보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거침없이 답하십니다. 사두개인들은 완전히 곁길로 빠져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 라인에 서서 성전 권력의 한 축을 이루고 있었던 이들이었지만, 정작 성경도 모르고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교회나 성도가 길을 잃는다면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살아있는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예수님은 사두개인들의 오류를 바로 잡으십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내세도 믿지 않았기에, 이 땅의 질서를 기준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만든 교묘한 질문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애초에 그들의 전제가 틀렸다고 말씀하십니다. 장가가고 시집보내는 일은 이 땅에 속한 일이지, 새로운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닙니다. 부활 때, 곧 장차올 세상에서는 더 이상 이 세상의 질서가 유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모세오경에서부터 부활이 전제되어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출애굽기(3:15-16)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으로 소개하십니다. 이러한 소개는 그들과 맺으셨던 언약을 상기시킵니다(출2:2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과의 언약을 지키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들과 맺으신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은 언약의 당사자들이 여전히 살아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또한 예수님의 재림 때, 곧 새로운 세상이 열릴 때 성도들과 함께 부활할 것입니다(참고.마8:11).
사두개인들은 예수님 말씀 앞에서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를 들은 바리새인들이 모여들었고, 율법사가 나아와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두개인들보다는 성경도 많이 알고, 부활도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부활이 있다는 것을 알고 믿으면서도 그것을 믿는 사람처럼 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 땅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살며 온갖 불의를 행하였습니다.
부활 교리를 붙들고 있다고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처럼 살아내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장차 올 세상에 대한 믿음은 반드시 우리를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계명으로 이끕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변치 않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성도, 살아있는 교회라면 반드시 이웃 사랑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이 땅의 존재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