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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교재(G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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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를 타신 예수님 / 21:1-9

2021.10.3.

 

 

 

 

맞이하기

 

 

*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온유함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온유함이 하나님께 순복하는 태도에서 나오는 성품이라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 세상에 나타내야 할 교회의 모습이 어떠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어떻게 세상을 이길 수 있을까요?

 

 

 

함께 기도하기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나귀를 타신 예수님 / 21:1-9

2021.10.3.

 

 

들어가며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사역의 절정을 이루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고자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직전까지도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절규가 그분의 귓가를 향하였습니다(20:30). 예수님은 이 땅의 곤고하고 비참한 운명을 짊어진 자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드디어 예루살렘에 들어가십니다.

 

1.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왕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직전에 두 제자를 보내셔서, 매인 나귀와 어린 나귀를 풀어서 끌고 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왜 굳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고자 하셨을까요? 마태는 스가랴 99절을 인용하면서 이것이 구약 예언의 성취라는 것을 밝힙니다. 스가랴는 장차 임할 이스라엘의 왕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이 왕은 병거와 말과 활로 대변되는 군사적 세력들을 무력화 시키고,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열방에 평화를 전할 것으로 예언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나귀는 왕들의 이동수단이 되곤 하였지만(참고. 왕상1:33-35), 열방의 군대를 무찌르는 왕이 타기에 적합한 동물은 아니었습니다. 군마가 아니라 나귀를 타고 세상을 정복하는 왕의 모습은 쉽게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제국은 칼과 무력으로 사람들을 제압하는 공포정치를 펼치고 있었습니다(참고. 13:1).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왕이 열방은 커녕 예루살렘이라도 정복할 수 있을까요?

따라서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 사람들의 눈에 나약하고 초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행보가 빌라도나 로마제국에 위협을 끼칠만한 것이었다면, 그들은 당장에 예수님을 제압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입성은 제국의 관심을 끌만한 위협적인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 왕이 겸손(온유)하여서 나귀를 타신다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수님은 군마와 병거를 타고 세상에 오신 왕이 아닙니다. 그분은 온유함을 가지신 평화의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는 왕이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자신을 내어주신 왕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세상을 이기신 방식입니다.

 

2.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따라야 할 교회

한편, 마태가 그리는 예루살렘 입성 이야기에서 풀어야 할 과제가 하나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 기자들과 달리 마태는 예수님께서 데려오라 하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타고 가신 나귀가 두 마리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물리적으로 나귀 두 마리를 동시에 타고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다른 복음서들의 기록대로 그중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셨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굳이 마태는 두 마리 나귀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까요? 마태는 이에 대한 단서를 남겨두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멍에를 짊어져야 함을 말씀하시면서, 겸손하고 온유하신 예수님께 와서 배워야 한다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11:29-30).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나귀는 '멍에를 메는 짐승'으로도 표현됩니다(21:5).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불러 오신 다른 나귀 한 마리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방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우리는 묵상해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과 함께 나귀를 타고 겸손과 온유함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규모와 크기와 세력의 방식으로 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유하고 겸손한 모습으로 옵니다. 그것은 세상이 주목하지 않는 방식과 태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순종과 의탁에서 나오는 자세입니다.

 

지금 세상은 그야말로 전쟁터 입니다.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를 향해 날이 서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전쟁터 같은 세상에 나귀를 타고 오신 왕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그 나귀를 타고 겸손과 온유함으로 세상을 이길 것을 명령하십니다. 교회는 따뜻하고 생명을 사랑하는 온유함으로 세상을 상대해야 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격렬히 싸우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하나님께 순복할 때 세상은 주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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