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청년의 뒷모습 / 마19:16-26 |
2021.8.1. |
맞이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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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예수님을 찾아온 한 청년의 모습과 내 모습에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습니까?
- 내가 가진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내 주위 사람과 어떻게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해 봅시다.
함께 기도하기 |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한 청년의 뒷모습 / 마19:16-26 |
2021.8.1. |
들어가며
한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젊고 유능한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영적 허기를 가지고, 아주 진지한 태도로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1.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이 청년은 예수님께 어떤 ‘선한 일’을 행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은 선생, 곧 랍비에게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한 것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해 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얻고자 한다면, 선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고 청년에게 말씀하십니다(레18:5).
그러자 청년은 다시 물었습니다. “수많은 계명들 중 어떤 특별한 계명을 말씀하십니까?” 다시 예수님은 십계명 후반부의 계명들을 열거하며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레29:7)는 한 말씀으로 요약하십니다.
무언가 특별한 가르침을 기대했던 청년은 의아했습니다. 그런 기본적인 계명들 모두는 그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온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청년이 유난히 교만해서 가진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파 출신 바울도 자신이 율법을 지킴에 있어서 흠 잡을 것이 없었다고 회고합니다(빌3:6). 이것은 당시 다수의 경건한 유대인들이 갖고 있던 율법관이자 자기에 대한 인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청년은 이 모든 계명들은 다 지키고 있는데, 아직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묻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은 본의를 드러내십니다. “네가 온전해지고자 한다면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와서 나를 따르라.” 이 말씀 앞에서 청년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그에게 재물이 많았기에, 그는 근심하며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2. 모든 소유를 팔아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
우리는 이 말씀을 접하면서 중요한 신학적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을 영생을 얻는 방법으로 제시하고 계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인간의 행위나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엡2:8). 그러므로 우리는 청년을 향한 예수님의 초대에 주목해야 합니다. “와서 나를 따르라.” 예수님 안에만 영생이 있고, 구원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르라는 초대에는 한 가지 걸림돌이 있었습니다.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재물이 많았던 청년은 결코 이 말씀을 행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명령을 통해 이 청년의 율법관이 천국의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키고 있다’는 청년의 확언, 더 나아가 당시 수많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확신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가 예수님의 말씀 앞에서 드러났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자구는 붙들고 있었을지 몰라도, 이웃사랑이라는 율법의 참 뜻까지는 행할 능력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이번에도 놀랐습니다. 경건하고, 재물의 복도 받은 이 청년이 천국에 못 들어가면 누가 들어간다는 말입니까? 그러나 이미 예수님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의 의보다 낫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5:20). 천국의 기준은 나름 경건하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의 수준보다 훨씬 높습니다. 그리고 그 기준에 유일하게 부합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분입니다(고후8:9). 그렇게 예수님은 이웃 사랑의 계명을 유일하게 행하신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전부를 쏟아 가난하게 되심을 통해, 우리 같이 영적 파산 상태에 있는 죄인들이 영생의 부요함을 얻었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 하나가 된 자들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를 새로운 순종으로 이끕니다. 예수님 안에서 부요케 된 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율법의 완성인 이웃사랑의 길을 걷게 됩니다(롬13:10).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우리는 이것을 연습하고 우리의 본성이 되도록 온전해져 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곁에 있던 제자들 역시도 우리처럼 아직 갈 길이 먼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그 하나님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이 우리를 자기만의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천국의 복을 누리는 새로운 존재로 빚어가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