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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공부교재(G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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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 봅시다.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 요약

*본문을 먼저 읽고, 아래의 요약을 모임의 인도자 혹은 인도자가 지정한 분(들)이 소리내어 읽습니다.

 

들어가며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시면서, 그분께 오는 자들에게 ‘쉼’, 곧 안식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안식은 당시 바리새인들을 중심으로 한 당시 유대 사회가 가지고 있었던 안식일의 쉼과 본질적으로 다른 것임이 나타납니다.

 

1. 바리새인들의 항의 (1-2절)

예수님의 제자들이 노중에 시장하여 밀밭에서 이삭을 잘라 먹었습니다. 율법은 굶주린 자들을 위해 남의 밭에서 이삭을 손으로 따서 먹는 것을 허용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필 이 날이 안식일이었다는데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통념상 제자들의 행위는 ‘일하지 말라’는 안식일 규정을 어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를 목격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항의하였습니다.

 

2. 성전보다 크신 안식일의 주인 (3-8절)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구약성경의 예를 꺼내어 드십니다. 먼저는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소년들의 이야기입니다(삼상21:1-6). 다윗은 사울에게 쫓겨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피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장으로부터 자기와 그 일행이 먹을 떡을 얻습니다. 그런데 그 떡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거룩한 떡, 곧 진설병이었습니다(참고. 레24:8-9). 그러므로 다윗과 그 일행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거룩한 떡을 먹은 것은 율법의 규정 밖에서 행한 일이었습니다.

또 다른 예는 안식일에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제사장은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거룩한 떡을 진설하고, 번제와 소제를 드려야 했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 모든 집무들은 ‘일’입니다. 그러나 성전 안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의 행동은 안식일 위반으로 여겨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성전 안에 있는 제사장들의 행동에 안식일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면,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 안에 있는 이들 역시 안식일 규정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서 제사장의 음식을 먹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듯, 성전보다 크신 예수님 안에서는 안식일 율법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그것을 폐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말씀으로 확증하십니다. 이 선언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구약과 율법이 가리키고 기대하던 모든 것이 예수님을 통해 완성되었습니다. 실체 앞에서 그림자는 사라집니다.

 

3. 안식일과 율법의 참 뜻 (25-27절)

예수님께서 율법의 완성으로 이 땅에 오셨기에,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그 율법의 참 뜻이 드러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핵심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호세아 말씀을 들어 이것을 상기시키십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신다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정작 율법이 가리키고 있는 ‘자비’는 놓친 채 율법 자구에만 머물러 있었습니다.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율법이 바리새들에게는 사람을 죽이는 도구가 되었습니다(14절).

다윗과 그 일행이 거룩한 떡을 먹을 수 있었던 것은 율법을 뛰어넘는 자비에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성전보다 크신 분이자, 안식일의 주인으로서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그 사랑 안에서 안식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자비를 근거로 하는 삶을 살라

 

성경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읽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기초로 성경을 읽지 않으면 우리는 차가운 율법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 안에서 우리의 모든 삶이 다시 정비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얼마나 더 많이 가지고 이루었느냐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만, 그리스도인의 기준은 ‘우리의 삶이 얼마나 십자가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드러내고 있느냐’여야 합니다.

 

은혜 나누기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나에게 성경이 나른 사람을 살리는 도구로 사용되고 있습니까?

- 예수님의 자비와 사랑이 우리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날 수 있습니까?

 

 

함께 기도하기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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