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저도 그렇게 믿습니다.
그런데.....
생각의 형성기라고 할 수 있는 시기에 역사의 주인공은 인간이며 인생의 주어는 '나' 라고 배웠습니다.
교회에서의 일주일에 한두시간을 빼고는 온통 그런 생각을 기초로한 교과서를 외우고 익혔습니다.
이성이 신앙에 앞서는 것을 익혔고
창조가 아닌 진화를 '사실'로 배웠으며
역사속에서 종교라는 권력단체가 행한 야욕의 흔적만을 배웠습니다.
우리 조상의 계보는 아담으로 부터가 아니고 아프리카 원시림에서 시작되었다고 배웠습니다.
내가 알고있는 역사,과학,문학,경제,정치 등등에는
하나님이 역사와 지혜의 주어라는 전제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내가 태초에 하나님의 천지 창조를 믿고 , 노아 홍수 심판을 믿고 ,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그렇지만 혼돈의 연속이었습니다.
오래된 지구와 진화가 과학적 사실이라고 배웠을 때 나에게 창세기는 신화의 모습이었습니다.
아담과 이브는 상징적으로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근본적 악의 성향을 설명하는 스토리였을 뿐이고
생명나무, 선악과 에덴 동산 등등도 옛 이야기였습니다.
지층의 연대는 노아 홍수와 아무 상관이 없는 것 처럼 보였고
과학의 발달을 통해서 본 종교의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 없이 개인 수양의 한계를 넘지 못하는 것 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교회는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니 , 주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믿음이 작다고....
그냥 믿으라고....
결국 나 혼자 그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눈을 열어 답을 알게 하신 결과
창세기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짜집기 따위가 아니라 생생한 사실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 노아 홍수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고 , 아브라함의 조상의 계보가 인류의 실제 역사란걸 알게 되고 믿게 되었습니다.
과학이 갖고 있는 편견(패러다임)과 이성이 가진 필연적 한계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신앙을 기만하는지 알게 되었고 그 결과 믿음은 반석위에 기초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리 삼일교회와 당회에 간곡히 부탁합니다.
지금의 젊은 세대가 이런 질문과 혼돈 속에 살고 있음을 이해 하시고
이에 대한 답을 해 주시길 간청드립니다.
해년마다 수십만의 무신론적 사고에 오염되고 세뇌된 청춘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들이 물을 때 어떻게 답해주고 설득을 할까요?
그냥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만물이 자연 법칙과 우연에 의해 형성되었다고 과학이 말하고 미디어가 말하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런데 여전히 그냥 믿으라고 해야 합니까?
대한민국 젊은이들의 신앙율이 2~4%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일교회의 30년후 , 대한민국의 30년 후 교회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과학과 이성에 의해 무너진 창세기를 다시 세워주십시요
교인들끼리 맴도는 이야기 말고 ....
과학에는 과학으로 , 이성에는 이성으로 답을 해주시기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되는 힘있는 |
변증을 보여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주신 질문에 공감되기에 저 역시 현재 솔루션을 찾아가는 과정이며, 변변치 않지만 몇자 적습니다.
질문을 읽으면서 중세 시대 스콜라 철학이 생각이 났습니다. 아퀴나스 같은 사람은 '이성과 언어로 모든 것(성경의 내용 포함)이 설명 가능하다'라는 전제를 가졌습니다. 스콜라 철학에 대한 반작용도 물론 있었지만 그 '흔적'들이 지금도 우리가 혜택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교리' 같은 형태로 말입니다. 기독교 변증 역시 이런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모태신자입니다. 성경을 '신봉'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성경이 신화처럼 여겨지고, 의심이 생길 때, 어느 누구도 그 부분에 대해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대신, 기도만 열심히 하면 해결된다는 답을 주시는 분은 많았습니다. 20대 중반에 회의주의를 경험한 이후 현재 누구보다 말씀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주신 질문은 현재 교회학교에서도 직면하고 있는 위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은하계의 별이 우리 눈에 보이기까지는 몇만 '광년'이 필요할텐데, 지구의 나이가 6천년이라고 세뇌한다면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 역시 위에서 말씀하신 2~4%의 반열에 들지 못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저의 교회학교 동역자들은 다음 세대를 위한 '변증'을 준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준비하는 변증을 두 가지로 압축하자면 (1) 본질, (2) 매개체 입니다. 현재 교회학교 교육의 흐름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윤리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라지고, 성품과 인격이 화두가 되고 있으니 말이죠. 그래서 본질에 집중해야 하고요, 두 번째로는 그 '본질'을 전달하기 위한 '교육방편'으로서 말씀해 주신 '변증, 이성'의 형태를 가미하는 작업을을 하고 있습니다. 부디 다음 세대 아이들이 2~4%가 아니라 20~40%가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으로 이 일을 기도하며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담임목사님께서 먼저 말씀해 주셨고, 교육위원장 장로님도 여러모로 도와주고 계십니다.
끝으로,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에 대한 이야기로 마치겠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독실한 신앙인이자 과학자입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첸체를 관측하면서 '지동설'의 확신을 가졌습니다. 물론 로마 교황청으로부터도 위협을 받았습니다. 교황청은 1616년에 코페르니쿠스를 '이단'으로 지정했는데, 종교개혁자들은 교황청보다 먼저 코페르니쿠스를 공격했습니다. "천문학의 앞뒤도 분간할 주 모르는 바보"라고 비웃었습니다. 그 '이단 사상'이 한 세기가 지나 케플러와 갈릴레이에게 전파 되었습니다. 갈릴레이 역시 지동설에 확신을 가졌고, 그것을 주장하다가 무시무시한 종교재판소로 끌려 갔습니다. 그는 심문이 두려워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습니다. 그러다가 독일에서 케플러가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런 고민을 가졌던 신앙의 선진들을 기억하면서 다음 세대를 위해 더 노력하는 교회학교가 되겠습니다.
==> 갈릴레이가 케플러에게 쓴 편지
저도 당신(케플러)처럼 코페르니쿠스를 지지하고 있으며, 최근 저의 연구들에 의해 더 이상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많은 증거들을 발견해 냈습니다. 저는 이 연구에 대해 업적과 평판을 나름대로 쌓았지만 코페르니쿠스 선생님의 사례를 보면서 감히 출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분은 불멸의 업적을 이루신 분이지만 세상의 무지한 사람들로 인해 불명예를 당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저는 케플러씨 당신 같은 분들이 더 많아지면 출판할까 합니다. 아직 그런 분들이 많지 않은 것 같아 출판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서 칼릴레오 갈릴레이 드림
==> 케플러가 갈릴레이에게 쓴 답장
대중들의 무시와 학자들의 공격 때문에 잠시 우리 주장을 철회하자는 말씀에 대해서 조언을 드리자면, 선생님처럼 탁월하신 분께서는 좀 다르게 생각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코페르니쿠스 선생님의 엄청난 연구를 토대로 더 많은 연구자들이 지동설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해서 그것이 '정설'로 인정받을 때가 되어서 우리의 연구를 출판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명하게, 그리고 결연하게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선생님이 지동설의 목소리를 내셔야 부당하게 재판을 받고 있는 우리 동료들이 힘을 내고 보호 받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이탈리아 뿐 아니라 우리 독일에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이 어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만일 이탈리아에서 출판하기 어렵다면 독일에서 출판할 수도 있습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선생님. 용기를 내셔서 출판 하십시오. 제가 확신하건대 우리와 힘을 합칠 학자들이 많이 생길 겁니다. 진실의 힘은 위대합니다.
독일에서 요하네스 케플러 드림
* 에필로그
코페르니쿠스의 저서 <천구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은 이단으로 낙인찍혀 금서로 지정되었다가 1835년이 되어서야 로마 가톨릭은 금서 지정을 철회했고, 그가 이단자가 아님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1543년에 폴란드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난 '이단자' 코페르니쿠스의 유골이 발견된 2010년에 그를 '최고의 성직자'로서 다시 국가적으로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종교재판소에서 이단으로 낙인 찍힌 갈릴레이에 대해서는 1992년에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식적으로 사과를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