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 세계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죄가 많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인간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물들 역시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죄가 많은 인간들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국가와 모든 지역의 교회들에게 던져진 새로운 의제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화해의 목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심이어야 하고, 동물의 비참한 처지에서 돈을 거는 거래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관심없는)창조적인 신학을 담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는데 하나님과 개에 대하여, 창조세계의 순환, 우주적 계약 등입니다.
신학적 통찰들에는 신적인 창조성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들을 기뻐하시기에 우리 역시 그들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음미, 그리고 특히 동물에 대한 학대로 미결되는 인간의 자만과 탐욕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이 포함된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마치 동물의 세계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한다. (개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배신 잘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열의 아홉이 남에게 전가하거나 버린다.) 몇몇 시편구절들과 반대로 기독교인들의 찬양은 오로지 인간중심적인 것에만 집중된다. 동물은 여기에 낄 자리가 없다. 이 배후에 있는 것은 예상보다 더 심각한 영적 빈곤, 혹은 더 정확히 말해 무지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동물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전통적 기독교 사상에 존재했던 신의 태만이라는 개념이 낸 길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물종들의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진심으로 이해할 때 더 이상 지탱하기 불가능한 개념이 된다.
또다른 큰 신학적 질문들이 있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독특하게 지어진 종 또한 똑같은 사랑의 돌봄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는가? 만약 동물위에 행사하는 인간의 힘이 힘 자체를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에서 언뜻 보여주신 도덕적 관대함이 - 즉 섬김을 통해 표현된 주권이-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동물을 다스릴 힘을 부여받았다. 이 힘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돌보시듯 그와같은 방식으로 동물을 돌보라고 주신 힘이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사람에게 주어야 마땅한 애정을 동물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 이 말은 거의 이 세상에는 제한된 양의 사랑만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동물에게 낭비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의 복리에 대한 전적인 집착은 이제 확실히 편협한 생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완고한 성서 신봉자들' 즉 성서를 들어 동물들을 때리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성서 어디에도 동물들이 단지 인간의 이용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이 지구 전체가 인간이 원하는 대로 맘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자주 우리가 마치'선택받은 종'인 것처럼 말합니다. 적어도 나는 우리가 선택받은 종은 맞으나 '다스리는 종'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라고 믿습니다.우리들의 소명은 약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상처입기 쉽고, 보호받지 못하고, 무고한-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존재들을 위해 우리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기독교적 목회입니다. 즉, 모든 고통받는 피조물들을 향한, 그리스도를 닮은 목회입니다.
신학자 앤드류린지 저술
책 '동물신학의 탐구' 중에서 발췌(내가 감동받고 이해하는 것만 발췌)
(어떤 기독교인들은 동물을 죽이는 것을 인간의 특권으로 생각하고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기업들을 지지하며 (열대우림파괴의 이유는 소고기 생산) 무턱대고 하나님이 다 먹으라고 주신거라며 다른 생명의 고통에 대한 양심을 닫아버립니다. 저는 육식주의에 푹 빠졌던 한 사람으로서 그 양심을 회피하는 기재를 너무도 잘 이해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건강상 문제로 채식주의로 돌아선) 가까운 사이의 목사님은 '하나님이 동물들을 인간이 도살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끔찍한 고통까지 당하게 하시는 건 아닐거야' 라고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셨죠. 저는 영화 '트루먼 쇼' 를 떠올립니다. 도살장에서 지금도 도살되는 동물들의 두려움과 비명과 고통이 하나님의 조작된, 인간의 자비심을 시험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연극같은 생각을 하고싶습니다. 현실에서 육식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의 처지는 내 능력밖이니까요.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