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의혹을 대하는 그리스도인

by 김태환 posted Jan 24, 2016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1. 최근 글들에서 수정과 삭제가 있었습니다.
- 박 장로 직무정지 및 면직 요청글에서 교역자 관련 부분을 수정하였습니다.
- 그리고 전화와 문자를 주신 목사님 관련 글과 관련하여 글 올리신 안집사님 글도 삭제되었습니다.

2. 왜 수정하고 지웠느냐?
- 사실 공개로 인한 각성 목적은 이루어졌지만 특정인이 지나치게 부각되어 곤란한 상황으로 발전하는 것은 더 이상 불필요했습니다.
- 별도로 필요한 내용의 대화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 그래서 일부 수정하고 지우는 것이 모두에게 더 유익이라는 판단을 했습니다.
- 의견 표명없이 글만 보신 분들을 위해 이렇게 추가로 글을 남깁니다

3. 그럼 왜 애초에 그 부분과 글을 썼느냐?
- 우선, 실명을 쓴 것과 다름없다 라고 거듭 주장하시는 분들에게 그럼 이제라도 진짜 실명을 밝히라는거냐 되물었고, 밝히지 않은 여러 출처와 당사자를 고려한다면 일부 의견 차이가 있더라도 실명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결국 적절하다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 그럼 왜 그렇게 구체적으로 썼느냐. 비록 실명을 쓰지 않더라도 구체적이어야 당사자든 관전하는 사람에게든 효과가 있는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두리뭉실하면 그냥 두리뭉실하게 나눠서 욕먹고 결국 누군가도 변화될 기회를 잃게 되지 않을까요. 실명은 공개하지 않지만 효과는 있어야겠기에 제가 선택한 타협 지점이었습니다.
- 당황스러웠던 것은 이 정도 수준에서 넘길려고 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도드라져버린 상황이 된 것입니다.
- 어쨌든, 감싸주지 못함에 서운하실 수 있음에 사과드립니다. 동시에 상황이 그럴 수 밖에 없었음도 먼저 이해한다고 말씀해주심은 감사드립니다.

4. 사실이었느냐?
- 우선, 똑같은 말과 사건도 시점과 정황과 어조와 관점에 따라서 다른 사실이 될 수 있습니다. 팩트는 같아도 누구의 사실이 누구에겐 사실이 아닐 수 있습니다.
- 저는 몇 가지 팩트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믿을만한 출처를 통해 전해 듣고 이건 사실이야 라고 충분히 주장할 수 있는 내용이 정리된 상태였습니다.
- 지도자 그룹과 관련된 의혹 제기를 당사자와 꼭 사전에 확인을 해야만 하는 것이 우선이라면 더군다나 이미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 사람에게 그래야 하는 것이라면 그들에겐 견제할 수 없는 더 많은 유혹이 따라올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사실 무책임한 카더라 보단 그런 논리로 진실들이 최초에 설자리를 막는 경우가 더 많음을 우린 알고 있습니다.
- 어쨌든 대화를 통해 저는 그 팩트들이 당사자의 악의가 아닌 잠깐의 신중치 못했음의 결과였음을 알게 되었고 이제는 진행형이 아님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시점이 다르고 과정의 일부였다고 잘못이 잘못이 아님은 아니라고 서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 오해하게 된 사람들이 발생하긴 했었지만 본인의 기여도 등을 내세우고 있지 않다고 확실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단지 박장로 면직 글에 본인 관련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힘드셨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든 부족함이 같은 맥락에 있을수 있음도 공유했습니다.
- 정황이나 사정이야 어쨌든 몇 가지 팩트만으로도 성도들이 실망할 수 있음을 인정하시고 사과하셔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적어도 현재는 성도들이 우려할 필요할 상황이 아님을 자신있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저는 여전히 지도자는 맥락에 적합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교회 재정은 세상적인 협상의 대상처럼 여겨지는 것 처럼 보이는 우는 범하지 말하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5. 문자는 왜 공개했느냐?
- 우선 1:1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 무엇보다, 정황상 근거 있는 문제 제기가 이루어 진 것이 사실이고, 심지어 배려해서 실명 처리도 하지 않았는데, 짧은 시간에 반복적인 전화와 더불어 전면 부인과 함께 위협하는 듯한 제스처를 문자로 전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제 상식에는 이런 경우에는 일단 본인 얘기가 맞는 지를 조심스럽게 확인을 하고 실망을 끼친 부분에 대해 가볍게라도 사과를 하고 해명을 할 수 있는 대화를 제안하는 것이 맞기 때문입니다.
- 기본적으로, 본인도 인정하듯이 기존 삼일교회 부교역자들이 성도들에게 상당히 무례합니다. 가만있어도 밀려드는 성도들을 대하는 갑 정신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본인도 그 부분에 상당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스스로와 많이 싸운다고 하셨습니다.
- 그런데, 어느 정도 나이도 있고 그리 쉽지 않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저에게도 이럴 정도면 도대체 그동안 어린 성도들에게는 어떠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이 드러내는 걸 두려워하고 참는 것에 익숙한 성도들에게 익숙해져 본인의 행동이 드러났을 때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것인지 객관화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지도자들에게도 각성의 기회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성도들을 함부로 대하지 마십시오. 1:1 대화가 가능한 선을 넘은 해당 커뮤니티의 공인과의 커뮤니케이션은 본인의 동의 없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져도 무방하다는 생각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 어떤 분이 지적하시긴 하셨지만, 문자를 통해 객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위협을 정말 제대로 느낀 것이 맞는지를 다시 확인하기 위해 상대방에 연락하지 않았다고 그 사람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물론, 문자를 공개하는 것 자체가 보는 사람에게 상당히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저도 상당히 불편했습니다. 그 부분은 이미 개인적으로 감수했을 뿐이지만 그로 인해 저에 대한 비난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불편했을 많은 분들에게 사과 말씀 드립니다.
- 다급해서 막 보낸 전화와 문자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해 주신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6. 개척 지원을 지지합니다.
- 한국교회는 지나치게 대형교회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 심지어 대형교회 담임목사가 대형교회 되기를 포기하면 담임목사 사임 압력을 받을 정도 입니다.
- 그런데, 현실이 증명하듯이 대형교회는 일단 그 자체로 성경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작은교회 운동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인 것 처럼 선전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저는 삼일교회에는 정말 제대로 된 개척교회를 세우고, 키우고, 함께 가는 시스템을 구축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단지, 개척지원이 논공행상처럼 여겨지거나, 퇴직자를 위한 퇴직 패키지의 일부처럼 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교회가 퇴직연금 처럼 되어서는 안되지 않겠습니까? 왜냐하면 교회이니까요.

7. 신물이 난다는 어떤 집사님의 표현에 동의합니다.
- 사임과 청빙의 과정 가운데, 그리고 가까웠던 성도들의 모습과 세월호를 통해 드러난 사회와 교회를 보며... 참 어려웠습니다.
- 무엇보다 교회를 어떻게 하겠다고 그렇게 뛰었던 저도 별로 다르지 않았음을 선명하게 되돌아 보면서... 더욱 어려웠습니다.
- 목자로서 아주 기본적인 역할만 겨우 겨우 하고 지내왔고, "교"와 "목"이 들어간 일에는 당분간 끼고 싶지 않아 그냥 지켜만 보고 있었지만, 박장로 기사는 그냥 넘길 수가 없었고, 또한 그는 하나의 단일 건이 아니라 삼일교회의 역사와 현재의 청산되지 않은 사람과 생각의 일부와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물에 가라앉기 전에 머리 한 번 물 밖에 내밀어 보자는 심정으로 직무정지와 면직에 관한 글을 올린 것이었습니다.
- 박장로 건은 절대 단일 건이 아니라 한 덩어리의 일부일 뿐입니다.
- 어떤 분의 말씀처럼 모두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입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피해자로서 서로를 위로해야 겠지만, 가해자로서의 책임도 담담히 져야 합니다. 외부인이 볼 때 삼일교회 교인은 전부 가해자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인이 더 열심히 뛰었다고 그 사실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무작정 다른 사람에게 삿대질 하면서 책임을 물을 권한은 우리 중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일이십년 이 교회를 다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말입니다. 저도 노력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보통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 꼭 그 방법 밖에는 없었냐는 질문을 너나 나나 할 것 없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때 주로 인터넷 공간의 한계를 지적하곤 합니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교회의 문제가 은폐되어 왔고 많은 한국교회의 문제들이 이 질문에 기생해 온 점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 한국 대형교회 중에 거의 유일하게 삼일교회가 게시판 창구가 살아있고, 게시판이 삼일교회의 자정 기능을 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들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에는 보기 불편할 수 있지만 우리 교회 게시판이 무책임한 카더라라는 폭로전이 통할 수 있는 곳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공식적인 지도자들은 공개적인 의혹 제기에 떳떳할 만큼 평소에 처신을 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기된 의혹에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는 문화도 정착되는 것이 교회의 건강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카더라의 남발의 우려를 남발하면서 의혹의 입증 책임을 지나치게 제기자에게 지우는 것은 기본적으로 독선적이고 독단적이기 쉬운 교회 환경에서 유혹의 텃밭을 비옥하게 하는 데 일조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혹에 겁을 줘서는 안됩니다. 즉, 꼭 그 방법 밖에 없냐가 아닌, 일단 그 방법을 쓸 수는 없냐로 질문이 바뀌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피곤하지만 결국 투명한 것이 제일 안전합니다.

또한, 많은 성도들은 의혹 제기로 기존에 평안하게 돌아가는 시스템이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여겨지는 상황 자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렇죠. 그래서, 일단 그런 상황을 단초를 제공한 (혹은 제공했을지 모르는) 사람 보단 알린 사람에게 먼저 반감을 갖게 되는 희한한 반응 패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위에서 말씀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에서 교회의 시스템을 믿을 수 있는 것 처럼 안주하게 되는 것 자체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대부분 착각입니다. 지난 몇 년간 뼈저리게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성도간 신뢰를 보내는 것과 서로를 끊임없이 점검해 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신뢰를 핑계로 덮어두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문제제기로 분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분열되는 것입니다. 사실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교회라는 조직은 가만 두면 한없이 독재적이 되기 싶습니다. 견제 장치가 거의 전무합니다. 소위 하나님만이 견제 장치시죠. 그런데 살펴보면 생각보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사람 처럼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 발견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인정합시다. 특히, 돈과 사람이 관련된 교회 시스템은 끊임없는 견제를 받아들이는 것이 서로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수많은 증거들을 단순히 카더라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라고 몰아부치며 거짓 증거하고, 명백한 청빙 방해의 본인의 행동마저 증거 있으면 대 보라며 가증을 부리고 있는 박신찬 장로를 보며 진실과 의혹을 대하는 적절한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