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종을 대적하면 심판 받는다.

by 백형진 posted May 19,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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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제가 신앙생활초기부터 겪은 위험해 보이는 목회자들의 발언들에 대해서 상당히 실망해서 격앙된 감정이 있는 상태에서 적은 글이라 교회의 지도자님들께서 보시면 혹시 그 감정이 실린것을 느끼실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의 가상적인 대상이 제가 신앙생활 초기부터 겪은 그 바람직하지 못한 모습의 목회자들임을 감안하고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저는 현재 우리교회에서는 그때 느낀 지도자들에 대한 감정을 느낀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주제가 주제이니 만큼 많이 조심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쓴 글에 달린 댓글중에 ‘교회의 질서’에 대한 저의 태도에 대해 의문을 가지시는 의견이 있어 변명을 해야 겠기에, 지금 새롭게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도 않은 것 같고해서, 길지만 또 예전에 쓴 글을 올려 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평범한 일반성도로서 한 생각들이므로(그래서 목회자쪽 보다는 일반성도쪽으로 생각이 치우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류도 있을 수 있고, 조심성이 많이 결여 되었을 수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몇몇 구절에 관한 해석에 관해서” 부분은 그야 말로 개인적인 해석입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권위를 두지 마시고 저런 생각도 있을수 있구나 정도로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지적해주셔서 바로잡을 수 있게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을 공개적으로 올린다는게 참 쉽지 않은 일이며 기도가 많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교회라는 영적인 공동체가 ‘말 한마디’에 의해서 얼마나 요동칠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을 알기에 참 조심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잘 절제케 해주시기를 기도하며, 또 읽으시는 분들의 넓은 이해의 마음을 기대하고 부족한 생각을 올려봅니다.)

 

 

 

 

주의 종을 대적하면 심판받는다.

 

 

 

 

나는 믿음생활에서 처음에 만난 교회가 생긴지 한 달된 개척교회였다.

그리고 목사님은 다른 사업을 하면서 목회를 하시는 분이었다. 목회란것이 모든 열정을 다 쏟아서 해도 힘든것인데, 다른 일과 병행하시다보니 교회에 소홀해져서 영적인 문제 그리고 인간적 관계에 대한 문제들이 많이 생겼다.

그렇게 생긴 여러 문제들을 겪으면서 자연스레 교회란 무엇인가? 교회공동체내에서 사람들간의 관계, 특히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어떻게 갖는것이 바람직한가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렇게 고민하고 기도하면서 느낀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관한 문제만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는 배려없음의 문제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었다.

소통과 대화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하나님의 일이라고 깊이 이야기 하는것 자체를 불경하게 여기고 두려워한 나머지 곪은 것을 그냥 두어 터지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교회의 일원으로서 느낀 점을 이야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는 내 생각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목회자의 경우 평신도의 입장에서 이렇게 느낄수도 있구나 라는 것을 생각해보는 측면에서,

그리고 평신도의 경우 자신이 느낀것과의 차이를 생각해보는 면에서 의미가 있을수 있다고 생각한다.

 

 

1.주의 종을 대적하면 심판받는다.

 

 

부흥사들이 교회마다 돌아다니면서 "주의 종을 대적하면 심판받는다" 는 말을 자주 했는데, 지성적인 젊은 사람들이 들으면 거부감이 많이 드는 말이다.

사랑과 온유를 말하고 희생을 말하는 교회에서 지도자를 반대한다는 이유로 심판받는다고 겁을 주는 것은 기독교의 진리에 맞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젊고 지성적인 초신자의 입장에서 거부감이 들고 이해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 하더라도 이는 성경적인 말이다.

미리암이 모세를 대적하다가 나병에 걸린 사건이나, 모세를 대적하다가 땅에 묻힌 고라일당에 관한 구약성경의 예가 아니라도,

 

 

신약성경에 교회공동체의 지도자, 특히 말씀을 다루는 지도자들에게 존경심과 순종하는 마음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것은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명문의 구절들도 많지만 꼭 명문이 아니더라도 성경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그런 질서에 입각해 있다는 것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다. 지도자를 세우시고 직분자를 세우신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함부로 조심성 없이 내세우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고 하나님의 뜻을 가볍게 여기는 태도이므로 심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

 

 

하나님은 어둠의 영에 잡혀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데 이용되는 사람들을 결코 가만두지 않으신다.

당장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나님이 그냥 넘어가시는 것이 아니다. 때가되면 말씀에 따른 심판을 하신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눈으로 보는 사람은 이 말이 분명히 사실로 나타나는 말이라는 것을 자주 보고 경험한다.

심판(징계)당하는 본인들은 영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눈이 없기 때문에 당장 아무일 없는데 무슨 심판이냐 라고 하지만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원인이 되는 잘못된 행동과 그에 따른 심판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그 인과관계를 읽을 수 있다.

내가 보지 못 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회개의 기회를 더 많이 주시고자 오래간 참으시는 마음을 읽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는 "무지"를 끝까지 고집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말하는 "무지함"이란 몰라서 하는 실수정도를 말하지 않는다. 순종하고 싶지 않아 모르는척 목을 뻣뻣하게 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분명히 말씀하셨고 가르쳐 주셨는데 완악함으로 인해 받아들이지 않는 상태를 "무지"라고 표현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공동체의 질서를 함부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인간의 본성,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본성등 여러가지를 감안해서 달래고 고치며 개선해가실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다.

그것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함부로 내 주장을 고집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무지"이다.

 

 

교회공동체의 일에 관해서는 신중해야 하고, 조심성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지도자에게 대적하지 마라" "지도자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원칙적으로 성경적이고 바른 교훈이다.

 

 

 

************************************

 

 

 

그러나 바르고 유익한 교훈도 치우쳐서 해석하고 적용하면 아주 위험할 수 있다. 로마 카톨릭 교회가 이를 극단적으로 해석해서 사제를 거의 하나님의 위치에 놓아서 지금 교황은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었다.

중세 카톨릭은 평신도들을 돼지키우듯이 자기들이 관리하기 편하게 성경도 보지 못하게 하고 교회에만 붙어 있으면 구원받는다고 하였다.

 

 

그런데 요즈음은 개신교에서도 교회마다 교황이 하나씩 들어앉아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린다. 성경적인 근거에서 상당히 벗어나서 지나치게 지도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는데 중세와는 또 다른 교권주의에 빠질 위험이 다분하다고 느낀다.

이런분들이 자주 사용하는 교훈이 "목사를 대적하면 심판받는다. 목사 잘 섬기면 복받는다" 라는 말이다. 왠지 이 교훈의 사용이 카톨릭이 성도들 관리하기 편하려고 그랫듯이 "성경말고 목사말 들으라"는 듯이 들릴때가 많아 위험함을 느낄때가 많다.

 

 

그분들은 구약의 모세와 제사장의 역할을 자신들에게 적용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새롭게 하신 교회의 질서는 기본적으로 신약의 가르침이 적용되고, 구약의 모든 제도와 의식은 신약의 십자가를 통해 정제해서 그 의미와 취지를 받아들여야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른적용이 아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이어지는 흐름, 그리고 전체적인 문맥에서 살펴봤을때 교회 지도자의 권위는 질서를 위한 권위, 섬김을 위한 권위이지, 군림하는 권위나 자기 주장하는 권위가 아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카톨릭에 대항해서 세워놓은 만인제사장의 질서를 깨고 불과 몇백년 지난 지금 제사장의 위치를 차지하려고 하는 목사들이 많다.

목사가 그런 역할을 감당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인이 가지고 있던 권한과 역할을 그대로 가진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그 사이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연결고리가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지도자가 추구해야 하는 리더쉽은 섬김의 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순종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설파하는 목사들이,

율법과 성경이 전혀 없었던 시대에 그 율법을 세우기 위해 특별하게 세운 지도자인 모세의 자리,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백성을 연결하던 중보의 자리인 제사장의 자리에 앉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신약시대에서 제사장과 레위인의 역할은 특정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들이 감당한다.

 

 

 

바른 분별을 위해 좀 더 세분해서 생각해봤다.

"주의종"에 대해 분별이 필요하며, "대적"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1)주의종.

"주의 종" 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일에 쓰시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 꼭 형식적으로 목사, 장로라는 직분에게만 주어지는 역할은 아니다.

평신도라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주의 종일 수 있으며 목사나 선교사 장로등의 직분을 가진 사람이라고 모두다 주의 종은 아니다.

 

 

목사라는 직분은 대외적으로 교회를 대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이므로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주의 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회에는 목사 말고도 주의종들이 많다.

교회의 치리를 하는 장로, 다락방을 인도하는 순장 등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라고 할수 있다. 다 맡은 역할에 따른 직분으로서 행하는 것이지 맡은바에 상관없이 절대적 무조건적으로 세워주시는 권위는 교회에 없다.

교회의 질서에 순종해야 하는 성도들의 입장에서 일반적인 치리의 문제에서 순종해야할 주의종은 당회이지 담임목사가 아니다. 담임목사도 교회의 일원이고 당회의 일원이며 그 치리에 따라야 하는 직분자다.

그리고 이 모든 직분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주어진 것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것을 가르치거나 요구하는 지도자는 주의종이라고 할 수 없다.

 

 

요즘 보면 "목사"를 직분이 아닌 구약의 제사장과 선지자를 합한것과 같은 권위를 가진 어떤 지위나 특수한 계급이라는 의미에서 "주의종"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는데 위험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지도자에 반대한 성도보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벗어난 지도자가 훨씬 무서운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경고하고 싶다.(약3:1)

물론 내가 하는 경고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긋났다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각오를 하고 하는 경고이다. 나는 말씀에 따른 문제제기나 반대의견을 "대적"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에 심판받으리라고 생각지 않고 하는 말이다.

성경말씀에 근거한 의견을 말하는 것이 "주의종"에 대한 불경이라서 하나님께 혼이 나야 한다면 나야지 어떻게 하겠나? 혼이 나더라도 잘못된 교훈에 끌려서 멸망의 길로 나가는 것 보다는 그게 낫다.

 

 

2)대적하지말라. (순종의 정도)

가능하면 순종하고자 노력해야 하겠지만 지도자도 사람인지라 완전히 믿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니므로 100프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인간에게 그런 수치는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이에 관해서는

내 생각보다는 전에 들었던 한 목사님의 견해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고 사랑의 교회 옥한흠 목사님은 데살로니가전서5:12-13을 본문으로 한 설교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다.

 

 

목회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말에는 원칙적으로 성도들은 순종해야 한다. 그것이 그를 세운 하나님의 뜻에 맞고, 또 그 목회자를 사랑하고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신앙생활을 풍요롭고 복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 목사님은 두가지의 예외를 달았다.

 

 

 

가)성경말씀에 맞지 않는말.

성경은 바르지 못한 가르침과 그것을 전하는 교사에 대해서는 아주 냉정한 태도를 취한다. 사귀지 말라. 내쫓으라로 일관한다.

마7:15에서는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울은 행20:30에서 눈앞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너희 중에서도 자기를 따르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 내가 안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많은 서신서에서 교회의 지도자인 거짓선지자와 거짓 교사들을 조심하고 삼가할것을 경고한다.

 

 

목사 타이틀을 단 거짓 선지자를 섬기면 거짓선지자의 벌을 받게된다. 이단과 잘못된 가르침에 빠진 사람들에게 목사 잘 순종하고 섬겼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시지 않을것이라는 것은 유치원생만 되도 알수 있는 말이다.

주의 종을 잘섬기기 위해서는 먼저 주의 종을 분간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성경은 교회의 지도자라고 무조건 순종하라고 말하지 않고 있으며, 분별 할것은 분별하고 순종 할것은 순종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벗어난 지도자에게 순종하라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명확하게 드러난 기독교의 정체성과 진리에 관한 중요한 교리 등에 관련된 거짓가르침에 관한 것이지

일반적인 성도의 생활에 대한 가르침이 다소 차이가 있거나 실수가 있는 정도의 경우에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조심스럽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평신도는 성경에 관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아주 이상한 말을 하지 않는한은 혼자 반응하지 말고 주변의 다른 지도자와 상담을 먼저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것이다.

 

 

 

나)신앙양심에 어긋나서 용납되지 않는말.

예를 든다면 목회자가 어젯밤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는데 '백만원을 헌금하라'는 등 지도자가 그 권위로 어떤 권면이나 요청을 하는데 내 마음에는 영적인 거부감과 부담감만 들고 전혀 은혜가 안될때는 그것에 억지로 순종하는 것은 위험할수 있다.

시험에 들수도 있고, 믿음의 바닥이 흔들려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억지로 순종하기 보다 일단은 피하는게 낫다.

하나님은 확신이 없는 일에 관해서 바른 분별을 하기 위해 우선 피한다고 해서 심판하실 정도로 그렇게 딱딱하신 분은 아니시다. 평안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시지 억지로 하게 밀어부치시는 분이 아니다.(갈5:1)

단 본인의 고집이나 나태함이 섞여 있지 않은가에 관해서는 진심으로 기도하고 점검은 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기도해도 평안이 없다면 다음에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기대하고 일단은 피하는게 낫다.

 

 

얼마전에 모 목사는 여집사에게 빤스내려 라고 말해서 내리면 자기 신도고 아니면 똥이라고 말한적이 있다.

그런 목사들이 하는 말에 순종한것을 하나님이 잘했다고 칭찬하실까?

죄짓는 목사에게 순종하고 동조하면 그건 같이 죄짓는 것이지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의 모든 순종은 사람이나 지위에 대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이다. 빤쓰내리라는 말에 순종하면 그건 같이 음란죄와 간음죄를 범하는 것이며 거기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무지함의 죄까지 더한 것이다.

 

 

자기들 마음대로 법궤를 앞세운 엘리 제사장의 두아들을 따라 나간 전투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패를 당했다. 거기 따라 나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순종했다고 축복하시지 않으셨다. 그리고 그 제사장의 두 아들은 거기에 따라나간 백성에 대해서 그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

인간이 할수 있는 말은 "말씀을 따라 갑시다.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 갑시다" 라는 말이지

"나를 따르라" 라는 말은 사람이 할수 있는말이 아니다.

그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봉사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른 권위를 인정해주는 것일 뿐이다.

 

 

선한 목회자들은 이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본다.

우리나라 성도들의 경우 이상한 교회, 이상한 목사를 경험한 사람들이 많다.

자기말만 들으면 통변하고 예언하며, 만사형통하고 등등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목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는 경우가 많고 이래 저래 그런 사람들을 겪어본 성도들이 많다.

그들은 은근히 그런말을 자주 한다. 목사말 안듣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져 불구가 된 장로, 목사 대적하다가 사업부도난 집사등등.

 

 

자라보고 놀란가슴 솥두껑 보고 놀란다고 성도들은 그런 목사들한테 들었던 말을 건강한 교회의 점잖으신 목사님들에게 들을때면 가슴이 놀랄때가 있다.

 

 

지도자에 대한 순종에 관해서 말할때는 조심스럽게 말할 필요가 있고, 그 기본적인 취지를 잘 말해줘야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이므로 순종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직분의 권위가 높은것은 더 섬기라는 뜻이며 더 낮아지라는 것이고,

또 잘못된 가르침등 따르지 말아야 할부분에 관해서도 언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혜롭게 잘 분별할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야지

무조건 목사말에 순종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목회자 본인은 선하고 의로운분이시더라도, 세상의 모든 목사가 그렇지는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들의 입장에서 무지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다 분별하지 못하므로 무조건 목사말을 듣는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할수도 있는데, 오히려 그것이 잘못된 태도일 수 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공부, 성경지식공부 많이 했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학교공부를 전혀 하지 못한 할머니 권사님이 신학박사 까지 마친 교수목사님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뛰어날 수 있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다. (예전에 신학대학교 총장까지 하신분이 꼭 예수 안믿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말해서 이슈가 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신학박사, 목사 타이틀을 단 사람들중에 예수를 모르고 예수를 안 믿는 사람들이 많다.)

요한일서에 보면 너희에게는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있어서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요일2:20,27) 학문적인 지식이 모자라도 바른 태도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진리에서 벗어난 것들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끝날 심판 당하는데까지 쫓아가서 변호해줄 능력이 없다면 자기 생각으로 먹여 살리고 품어갈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선포하고 가르쳐야 한다.

 

 

 

2.주의 종을 잘 섬기면 복받는다.

 

목회자 잘 섬기면 복받는다고 하면서 엘리야를 대접한 과부의 예를 드는 경우가 많다.(왕상17:8이하)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을 돕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돕는 것이다. 이는 당연한 얘기다.

교회를 잘섬기고 말씀에 따라 사역하는 교역자들을 돕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 복받을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분별할 문제가 남는다.

"하나님의 일" 을 하는 사람을 도왔을경우다.

하나님의 종의 이름표를 달고 일을 하는 사람을 도왔다고 하나님께서 복주시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종의 이름표를 달고 나쁜일을 하는 무늬만 그럴싸한 목사나 장로를 도왔다면 그건 같이 나쁜일 한거지 복 받을일 한것이 아니다.

(제대로 모르고 한일이라도 최소한 하나님의 사람을 분별할수 있는 눈을 가지지 못한 무지와 영적 둔감함에 대한 질책은 받을수 있다.)

 

 

나는 그런분들을 많이 봤다. 이런 저런 성경말씀 다 제껴놓고 목사를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 매뉴얼을 잘 배워 놓았다고 자랑하는 여집사님들.

그리고 그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자식을 굶기면서 목사님에게 닭잡아준 감리교 3형제목사님들의 어머니를 예로 든다.

당시 먹고살기 힘들때 모든것을 하나님께 걸고 고생하는 목사에게 닭을 잡아먹인 그 어머니의 아름다운 마음과

타워팰리스 사는 재산이 몇십억인 목사에게 외제차를 선물하는 것을 똑같이 적용해서

목사 잘 섬겼다고 복받는다고 할수 있겠는가?

자기보다 10배는 더 잘 벌고 잘사는 목사들에게 따로 돈봉투를 주는 그 마음이 같은 마음일까? 하나님이 보시기에 같을까?

 

성경의 일부분만을 확대해서 자기 해석하고싶은 모양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자기 생각일 뿐이다. 하나님의 생각이 아니다.

 

 

성경전체의 맥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꼭 살펴야 한다.

엘리야와 과부가 처한 상황, 그리고 엘리야와 과부의 성품,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보는 영적인 민감성등 여러가지 살펴서 그 과부가 기적을 체험하고 복을 받은 이유를 살펴야지.

무조건 목사한테 닭잡아주고 차사준다고 복받는다면, 나는 이런 저급한 종교를 믿고 싶은 마음이 없다.

 

 

원칙적으로 목사 잘섬기면 복받는다는 말은 맞는 말이다.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 잘 듣는 순진한 기독교인들을 상대로 사기쳐먹으려고 목사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처음에는 나름 바른태도로 가다가도 변질된 사람들도 있다. 삯꾼(요10:12)이라는 말은 현시대말로 월급쟁이라고 할수 있다. 하나님의 사역의 자리를 사명으로 수행하지 못하고 직업으로 월급받는 곳으로 때우는 목사들이 있다. 그리고 세상의 타락한 교사들처럼 은근히 봉투를 바라고 부수입을 챙기기를 원하는 목사들도 있다.

 

 

목사 잘섬기면 복을 받는다는 말은 원칙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거기에는 책임이 따른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종을 분별하는 믿음과 분별력을 가질 책임.

 

 

 

3.몇몇 구절의 해석에 관해서.

 

 

1)민수기 12장 미리암이 벌을 받은 사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구스여인을 취하였다고 그를 비방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하나님이 너만 아느냐? 우리도 안다 라고 말하면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질서에까지 대적했다.

이 구절을 현시대의 목회자와 성도들 사이에 적용하는 경우가 종종있다. 목회자가 잘못을 하더라도 아무말 하지 말고 기도만 하라고 말이다.

이 구절에 관해 많은분들은 모세가 아내 십보라가 죽은후 구스여인을 후처로 들였다고 해석한다. 혼외정사였다고 보지 않는다.

 

지도자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는 분들은 십보라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혼외정사를 한것까지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모세의 편을 들어준것이라고 해석하는데, 나는 많은 분들의 견해와 같이 율법을 받는데 쓰인 모세가 그런 혼외정사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봐주셨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혹여 그런 견해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렇게하다가 하나님께 혼날수 있다" 라고 말을 해준것이었더라도 하나님이 미리암에게 벌을 내리셨을까?

또 구스여인을 취한 이후에 "너만 하나님을 아냐 우리도 안다" 라며 하나님께서 계시의 통로로 모세를 사용하시는 그 질서를 왜곡하고 대항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회개해야 한다. 우리가 같이 기도하겠다". 라고 말했다면

그것도 하나님이 혼을 냈을까?

미리암과 아론은 단순히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질서에 관해서 도전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었다.

 

 

이 사건을 지도자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이다 라는 식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바른 해석은 하나님의 계시인 말씀을 자기 뜻대로 함부로 해석하려는 태도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사용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늘날로 보자면 지도자에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에 대한 심판이라고 볼수 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권위가 주어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의 질서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무조건 목사편을 들거나 편파적인 잣대로 잘잘못을 판정하신다고 생각하면 그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맞지 않다.

 

 

 

2)히브리서 3장 17절 말씀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그들은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신들이 청산할 자인것 같이 하느니라 그들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

 

 

많은 설교자들이 본 구절을 성도들이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근거가 되는 말씀으로 사용하는데 기본적으로는 맞는 사용이다. 그러나 그 분명한 의미와 조건도 빼지말고 설명할 필요가 있는 말씀이다.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당시 전체교회의 지도자가 서로 아는 사이인 유대인기독교인공동체에 신앙에 관한 서신을 보낸 것이다.

즉 서신을 쓰는 사람이 그 교회의 지도자들을 개인적으로 알고 그들의 신앙과 인격과 지도자로서의 자질과 지도자로서 행한 일들을 알고 있다는 말이다.

이렇게 그 지도자들을 개인적 개별적으로 알고 쓴 글을 모든 교회의 지도자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는 말로 쓰는 것은 조심성 없는 확장해석이다.

 

 

오히려 이 구절은 교회의 지도자가 성도들을 목양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가를 가르치는 구절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어떤 지도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해야 하는 지의 기준을 제시하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다.

목회자에게 무조건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라고 하는 구절은 아니다.

 

 

 

3)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사건.(삼상24:6)

하나님께서 기름부으신 자를 자신의 손으로 죽일 수 없다고 한 다윗의 고백이 교회의 지도자들이 잘못하더라도 대적하지 말라고 하는 구절로 많이 사용된다.

이 말씀의 사용도 기본적으로 다 틀린 사용이라고 할수는 없다.

 

 

그러나 이도 치우치게 적용하면 위험한 해석이 될수 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사울에게 순종하지도 않았다. 사울이 옳다고 추종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이 세운 지도자의 목숨을 끊는 것을 하나님께 맡겼을 뿐이다.

사울이 잘못됬다는 것을 지적했다.(삼상24:8 이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하나님의 주권을 존중 한것이지 결코 잘못된 지도자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구약에서 하나님이 기름부어 세우신 한명뿐인 왕과 신약에서 교회의 질서를 위해 세운 수많은 직분자를 똑같은 수준에서 비교하는 것도 썩 옳다고 볼수는 없다.

당시에 기름부어 세운 왕을 폐할 방법은 하나님께서 폐하시거나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거역하는 반역의 방법 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의 교회지도자나 직분자의 경우 사임등 공동체에서 직분을 거두거나 제한할 수 있는 등의 방법이 교단이나 교회의 정관에 정해져 있다.

권위의 수준자체가 비교가 적당치 않은 면이 있다. 왕은 그 자체로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그 권위를 교회의 지도자나 직분자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나 윗사람들에게 취해야할 태도에 대해서 존경과 순종의 좋은예로 그 취지를 받아들이는 수준에서 적용되어야지

현시대에도 그대로 수평적으로 적용해서 토도달지 말고 무조건 복종하라는 식의 적용은 적절한 해석이 아니라고 본다.

 

 

북이스라엘이 종교적으로 타락해 갈 때

그 주민들 중에는 예배를 위해 남유다로 옮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어떤면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질서를 위해 세운자들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명령에 따라 유다로 와서 바른 예배를 드리지 말고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으로 가서 송아지를 섬기는 것이 순종인가?

 

 

옳고 그름을 다 빼놓고 교회 지도자의 말을 안들었다고 사다리에서 떨여져 다리가 부러져야 한다면,

로마교황에게 반기를 든 루터와 칼빈은 63빌딩쯤에서 떨어져야 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지도자의 가르침과 교회의 질서에 순종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의 상당수 지도자들이 요구하는 지도자에 대한 순종의 정도는 숭배에 가까운 경우가 종종 있다.

구약의 몇 구절 뽑아서 전체적인 성경의 맥과 다르게 해석된 지도자와 성도와의 관계가 한국교회에서는 성경적인 것처럼 오해되는 분위기가 너무 짙게 깔려있다.

 

 

 

4.결어.

기독교의 권위는 하나님이 세워주는 것이고 타인들이 세워주는 것이지 자기입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가 자꾸 자기입으로 자기 권위를 세운다면 그것을 대하는 성도의 태도는 둘째치고, 그 지도자의 상태는 이미 하나님과의 바른관계에 있는 상태는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께서 권위를 세워주신것은

 

 

서로 사랑하고 설득하는 수준높은 인간관계를 교회 공동체가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하게 하심이지, 지도자의 편의대로 귀찮은 절차 거치지 않고 일처리를 하게 하는 그런 독선을 허용하신것이 아니다.

 

 

교회의 모든 권위는 섬김으로 세워지는 권위, 낮아짐으로 세워지는 권위이지 강제나 의무로 세우는 권위가 아니다.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서로 협력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귀한 관계이다.

이 관계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솔직하게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서로 자신들의 입장이나 고집에 따른 반목과 오해는 없는지 잘 살펴서,

예수님의 말씀과 성품이 그 관계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