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삼일교회 등록교인이지만 '자발적 생계형 비정규직노동자'로
‘주일성수’도 턱걸이 정도로 참석하는 자이고, 점잖은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래의 글이 읽기에 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존재가,
삼일교회에 전병욱 전 담임목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로 다르지 않은 ‘경제성장’과 ‘교세확장’.
아직 제 허접한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게 많습니다만,
분명 그때 그 자리에 그들을 두신 뜻이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나랏일에 대해선 대를 이은 그 딸의 어이없는 언행 때문에 말을 아끼겠습니다.
삼일교회에서 ‘교회생활’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교회의 모습’에 대해 느끼는 기쁨과 화조차 슬슬 사라지는 게 두려워집니다.
교회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오니,하는 득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가 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9:17->
이 말씀이 새삼 간절해져서 불특정 몇 부서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격하더라도...
홈페이지 담당부서에
‘게시판 운용 개선공지’는 다시 봐도 현직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 따른 조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불통’입니다. 물론 관리하시는 담당 목사님의 깊은 생각이 있었겠죠? 그쵸?
우리 전 목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그런 헛소문에 관심 둘 시간에 성경이라도 한 번 더 읽으라는,
당시의 불쌍한 간사, 리더, 부목사들의 언론커버 플레이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곳이
게시판인데 틀어막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체 여론이 ‘조정’ 되어야 할 정도로 삼일교회 수준이 한심한 지경인가요? 뭔가 분란이 일어날 것 같나요?
어린이처럼 마구 떠들고 뛰어다니고 울어댈게 뻔하니 나눔이든 상담이든 건의든 1:1로만 해결 해야 하는 건가요?
하긴 홍대 새 교회가 생겼을 때 따라나선 교인들을 생각하면
‘사역보고’에 올리는 ‘OO팀의 OOO간사 예배 OO명 모임 OO명’에 숫자 보다 이름을 올려야죠.
주보 헌금명단에 이름 올리듯이 후회 없게요. 삼일교회가 60주년이 지났지만,
격조 있는 성도들로 인해 게시판은 소금에 절여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덩치 큰 개척교회’ 수준이라 안타깝습니다.
2. 당회에,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편입니다. 모르는 언어의 크레딧이라도 말이죠.
감동을 삭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예배 끝날 때도 마찬가집니다.
좀 더 감흥(?)을 기도로 이어가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죠.
요즘은 교인 수가 줄어서 우르르 몰려가고 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절대 저희 할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오고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격한 퇴장에 엄두를 못냅니다.
송태근 목사님이 설교 때 자주 그런 말씀하시더군요.
이맘 때(5부 예배)만 되면 말이 꼬여서 허튼 소리가 튀어나온다고요. 별로 재미없는 말입니다.
그럴 거면 왜 무리한 설교시간을 잡으셨나요? 예배 횟수를 줄이면 교인 수가 줄어서 재정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인가요?
예배 때 1층 소예배실, 5층 체육관, C관은 텅텅 비던데 거기로 채워서 예배 하면 안되나요?
담임목사님의 용안을 꼭 보면서 설교를 들어야 예배 좀 한 것 같은 건가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3. 예배운영부에,
이건 직업병이 전이된 의견입니다.
B관은 회당식 예배당으로 운영하다보니 십자가 없는 거, 장로 의자 없는 거, 부담 없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비대칭적으로 서 있다가 사라지는 성가대를 보노라면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운데 오면 안됩니까? 동선이 문젭니까? 불경스러운 겁니까?
어차피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설교가 예배의 가장 큰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좀 더 설교에 집중하는 무대로 배려하면 안됩니까?
주일 예배 찬양시간에 좌측 POP(3-4명)는 왜 서 있는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세션팀은 들어오고 나간 자리를 보란 듯이 새겨놓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몇 번을 ‘공연’ 하는 데 그렇게 안맞나요?
찬양 인도자가 우측에서 80년대 ‘준비찬송’ 간지가 내며 진행하다가 사회자가 나오면
가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찬양을 부르자며 뒷북 두드릴 때가 있습니다.
서로 친하지 않은 거죠? 화려한 거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호흡이라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틀릴지 조마조마 합니다.
차라리 새벽 예배 때 피아노 한 대로 건조하게 진행 하는 게 더 집중하기 좋습니다.
4. 삼일뉴스 제작자에게,
뉴스 영상이 ‘데스크’의 역할 없이 ‘보고용 스케치’로만 끝나면 주보는 왜 만들겠습니까?
이제까지 무슨 검열이 있었나요? 그런 자율권도 없이 ‘매체봉사’하셨나요?
독립적인 제작시스템이 안된다면 ‘어용’이죠.
신년에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앵커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하는 뉴스를 봤는데,
웃겼습니다. 그런 의도인가요?
새해 ‘삼일교회의 나갈 방향’으로 시작했는데 ‘표어, 목표, 계획’ 이런 건 설교 때 충분히 설명하셨던 거 아닌가요?
앵커는 질문할 줄 모르나요? 4명이 앉아서 질문 하나씩만 하면 역할을 다한 건가요?
해결되지 않은 전임목사 평양노회 재판건,
사임한 목사와 새로온 목사에 대한 교역자 대표로서의 반성과 계획,
여전히 10여년 넘게 우려먹고 있는 구태한 선교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
다음 세대를 가르칠 교사모집에 늘 힘들어하는 주일학교의 격려 방법,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다는 긍휼 사업부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역하는지...
아젠다가 없어서 못한 건 아니겠죠? 그런 일할 사람이 없는 건가요?
설마 삼일뉴스 시간이 모자라서 짧게는 못하니 대충 쉬운 걸로 가야 성도들이 알아들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시겠죠?
주차장에서 욕하는 성도를 ‘디스패치’ 수준으로 촬영해 고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덮어두면 아름다운 거름이 될 것을 하며 농사꾼 마인드로 영상매체에 있으면 곤란하다는 거죠.
‘자체 대안’이 힘들다면 ‘함께 지혜를’ 모으는 데 마중물 역할이라도 하자는 겁니다.
제가 좀 격한 감정이 올라와 격하게 글을 썼지만, 그냥 올립니다.
혹시 해당 성도로 계시는 분들의 더 지혜로운 생각이 있다면,
부디 28일 전까지 댓글로 깨우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진 13기 오태호.
‘주일성수’도 턱걸이 정도로 참석하는 자이고, 점잖은 글을 잘 쓰지 못합니다.
그러니, 아래의 글이 읽기에 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사회에 박정희 전 대통령 같은 존재가,
삼일교회에 전병욱 전 담임목사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별로 다르지 않은 ‘경제성장’과 ‘교세확장’.
아직 제 허접한 지혜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한 게 많습니다만,
분명 그때 그 자리에 그들을 두신 뜻이 있다고 믿는 편입니다.
나랏일에 대해선 대를 이은 그 딸의 어이없는 언행 때문에 말을 아끼겠습니다.
삼일교회에서 ‘교회생활’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교회의 모습’에 대해 느끼는 기쁨과 화조차 슬슬 사라지는 게 두려워집니다.
교회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오니,하는 득도의 경지에 오르지 못해서 그런가 봅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9:17->
이 말씀이 새삼 간절해져서 불특정 몇 부서 분들께 말씀드립니다. 제가 좀 격하더라도...
홈페이지 담당부서에
‘게시판 운용 개선공지’는 다시 봐도 현직 대통령의 신년기자회견에 따른 조처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참한 ‘불통’입니다. 물론 관리하시는 담당 목사님의 깊은 생각이 있었겠죠? 그쵸?
우리 전 목사님은 그럴 분이 아니라는,
그런 헛소문에 관심 둘 시간에 성경이라도 한 번 더 읽으라는,
당시의 불쌍한 간사, 리더, 부목사들의 언론커버 플레이에 새로운 시각을 던져준 곳이
게시판인데 틀어막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체 여론이 ‘조정’ 되어야 할 정도로 삼일교회 수준이 한심한 지경인가요? 뭔가 분란이 일어날 것 같나요?
어린이처럼 마구 떠들고 뛰어다니고 울어댈게 뻔하니 나눔이든 상담이든 건의든 1:1로만 해결 해야 하는 건가요?
하긴 홍대 새 교회가 생겼을 때 따라나선 교인들을 생각하면
‘사역보고’에 올리는 ‘OO팀의 OOO간사 예배 OO명 모임 OO명’에 숫자 보다 이름을 올려야죠.
주보 헌금명단에 이름 올리듯이 후회 없게요. 삼일교회가 60주년이 지났지만,
격조 있는 성도들로 인해 게시판은 소금에 절여져 있는 줄 알았습니다. 여전히 ‘덩치 큰 개척교회’ 수준이라 안타깝습니다.
2. 당회에,
감동적인 영화를 보면 엔딩 크레딧을 끝까지 보는 편입니다. 모르는 언어의 크레딧이라도 말이죠.
감동을 삭이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예배 끝날 때도 마찬가집니다.
좀 더 감흥(?)을 기도로 이어가고 싶은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죠.
요즘은 교인 수가 줄어서 우르르 몰려가고 오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절대 저희 할머니를 교회에 모시고 오고픈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젊은이들의 격한 퇴장에 엄두를 못냅니다.
송태근 목사님이 설교 때 자주 그런 말씀하시더군요.
이맘 때(5부 예배)만 되면 말이 꼬여서 허튼 소리가 튀어나온다고요. 별로 재미없는 말입니다.
그럴 거면 왜 무리한 설교시간을 잡으셨나요? 예배 횟수를 줄이면 교인 수가 줄어서 재정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인가요?
예배 때 1층 소예배실, 5층 체육관, C관은 텅텅 비던데 거기로 채워서 예배 하면 안되나요?
담임목사님의 용안을 꼭 보면서 설교를 들어야 예배 좀 한 것 같은 건가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3. 예배운영부에,
이건 직업병이 전이된 의견입니다.
B관은 회당식 예배당으로 운영하다보니 십자가 없는 거, 장로 의자 없는 거, 부담 없어서 좋습니다.
그런데 비대칭적으로 서 있다가 사라지는 성가대를 보노라면 뭔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운데 오면 안됩니까? 동선이 문젭니까? 불경스러운 겁니까?
어차피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설교가 예배의 가장 큰 시간을 차지하는 것이라면,
좀 더 설교에 집중하는 무대로 배려하면 안됩니까?
주일 예배 찬양시간에 좌측 POP(3-4명)는 왜 서 있는지, 무슨 노래를 부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과 호흡이 잘 맞지 않는 세션팀은 들어오고 나간 자리를 보란 듯이 새겨놓습니다.
일주일에 하루씩 몇 번을 ‘공연’ 하는 데 그렇게 안맞나요?
찬양 인도자가 우측에서 80년대 ‘준비찬송’ 간지가 내며 진행하다가 사회자가 나오면
가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찬양을 부르자며 뒷북 두드릴 때가 있습니다.
서로 친하지 않은 거죠? 화려한 거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호흡이라도 맞았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틀릴지 조마조마 합니다.
차라리 새벽 예배 때 피아노 한 대로 건조하게 진행 하는 게 더 집중하기 좋습니다.
4. 삼일뉴스 제작자에게,
뉴스 영상이 ‘데스크’의 역할 없이 ‘보고용 스케치’로만 끝나면 주보는 왜 만들겠습니까?
이제까지 무슨 검열이 있었나요? 그런 자율권도 없이 ‘매체봉사’하셨나요?
독립적인 제작시스템이 안된다면 ‘어용’이죠.
신년에 담임목사님을 모시고 앵커들이 몇 가지 질문을 하고 답변하는 뉴스를 봤는데,
웃겼습니다. 그런 의도인가요?
새해 ‘삼일교회의 나갈 방향’으로 시작했는데 ‘표어, 목표, 계획’ 이런 건 설교 때 충분히 설명하셨던 거 아닌가요?
앵커는 질문할 줄 모르나요? 4명이 앉아서 질문 하나씩만 하면 역할을 다한 건가요?
해결되지 않은 전임목사 평양노회 재판건,
사임한 목사와 새로온 목사에 대한 교역자 대표로서의 반성과 계획,
여전히 10여년 넘게 우려먹고 있는 구태한 선교방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
다음 세대를 가르칠 교사모집에 늘 힘들어하는 주일학교의 격려 방법,
소외된 이웃을 돕는 다는 긍휼 사업부가 어떻게 시스템을 구축하고 사역하는지...
아젠다가 없어서 못한 건 아니겠죠? 그런 일할 사람이 없는 건가요?
설마 삼일뉴스 시간이 모자라서 짧게는 못하니 대충 쉬운 걸로 가야 성도들이 알아들을 거라는 생각은 아니시겠죠?
주차장에서 욕하는 성도를 ‘디스패치’ 수준으로 촬영해 고발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덮어두면 아름다운 거름이 될 것을 하며 농사꾼 마인드로 영상매체에 있으면 곤란하다는 거죠.
‘자체 대안’이 힘들다면 ‘함께 지혜를’ 모으는 데 마중물 역할이라도 하자는 겁니다.
제가 좀 격한 감정이 올라와 격하게 글을 썼지만, 그냥 올립니다.
혹시 해당 성도로 계시는 분들의 더 지혜로운 생각이 있다면,
부디 28일 전까지 댓글로 깨우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7진 13기 오태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