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아카데미에서 1학기 송영목 교수님의 <선교적으로 읽는 요한계시록>에 이어 9월 28일에는 정성국 교수님의 <선교적으로 읽는 고린도후서> 특별강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또 12월에는 권해생 교수님의 <선교적으로 읽는 요한복음> 강좌가 열립니다. 이쯤하면 성경을 '선교적으로' 읽는다는 것이 무엇이길래 강좌 이름을 그렇게 정하는지 궁금하실 분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교적 성경읽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이 글은 딘 플레밍이라는 분의 글을 토대로 작성되었습니다.)*
선교적 성경읽기는 근래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사실 선교와 성경연구는 완전히 다른 영역으로 생각되어왔습니다. 선교가 현장이라면 성경연구는 책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우선 성경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성경이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라는 인식을 많이 갖게 된 것이 중요한 변화입니다. 한편 선교사나 선교학자들도 선교가 인간에게 주도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성경이 말하는 선교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관점의 변화들은 선교와 성경 연구를 통합적인 시각으로 이해하도록 이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오랜기간 유지되어 오던 서구의 기독교 중심 사회(크리스텐덤)가 무너졌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교회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을 새롭게 이해해 나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러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하나의 시도가 선교적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교 하시는 하나님과 참여하는 백성의 이야기
그렇다면 성경을 선교적으로 읽고 해석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선교는 죄로 어그러진 세상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회복시키시는 일이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그분의 백성을 택하셔서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 속으로 보내십니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해, 선교하시는 하나님과 거기에 동참하는 백성의 이야기에 주목하여 성경을 읽어나가는 것을 선교적 성경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선교하시는 분으로, 그분의 백성을 그 선교에 참여하는 자들로 이해하는 것이 이러한 성경읽기의 중요한 전제입니다.
이것은 성경이 첫 부분에서부터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창세기는 아름답고 완벽한 창조가 인간의 죄로 인해 어떻게 깨졌는지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께서 죄와 비참에 빠진 인간을 위해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럼에도 계속되는 반역 가운데 하나님은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외 그의 후손을 복의 도구로 삼아 열방을 회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 이뤄질 것으로 기대되지만, 세상의 빛으로 부름받은 민족이 깊은 암흑 속으로 들어가면서 큰 위기에 빠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해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이야기는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이자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 절정에 놀랍게 도달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회복시키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은 새로운 이스라엘인 교회를 통해 열방으로 퍼져나갑니다. 교회는 예수 안에서 진정한 복의 전달자가 됩니다. 따라서 성경의 전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교하시는 하나님과 그 선교에 동참하는 백성인 교회를 만나게 됩니다.
선교적 정체성의 회복
선교적 성경읽기의 중요성은 단지 이 이야기를 발견하는 것에만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선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의 결과이면서 동시에 선교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우리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것에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 듯 신약성경의 대부분을 이루는 서신서들은 진공 상태에서 기록된 것들이 아닙니다. 성경의 저자들 자체가 이 선교에 참여하고 있었으며, 편지를 받는 이들은 각자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서신들은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기 위해 무엇을 갖추고 무엇을 버려야 할지를 실질적으로 가르칩니다. 우리가 선교적 성경읽기를 한다는 것은 성경의 이러한 목적을 인식하며 성경을 읽는 것을 포함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선교적 정체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정체성에 걸맞는 능력과 자질을 구비토록 우리를 다듬어 나갑니다.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
그러므로 선교적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결과적으로 지금 이 시간과 장소에서 우리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하도록 만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떤 선교학자가 교회를 복음의 해석이라 부른 것은 매우 적절합니다. 다양한 상황 속에 처해진 교회는 다양한 모습으로 복음을 세상에 증언합니다. 그렇기에 같은 성경 본문이라 할지라도 뉴욕에서 읽혀지고 해석되는 것과 서울에서 이해되는 것에는 그 함의와 적용에 있어 차이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들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 문화적 환경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본질은 같을 지라도 그것이 표현되고 선교적으로 수행되는 면에 있어서는 다양한 강조점이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그 반대 방향 역시 중요한 측면입니다. 즉 특정한 문화로 인해 오독하거나 놓치고 있던 성경의 메시지를 발견하여 우리가 기대어 살고 있는 문화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 관심, 복음을 문화 속에서 드러내는 일과 문화를 복음으로 새롭게 하는 일은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은 교회가 선교적 성경읽기를 통해 추구해야 할 중요한 과제입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읽기가 필요하다
이처럼 선교적 성경읽기는 선교하시는 하나님과 그에 참여 하는 백성 곧 교회에 관심을 두고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선교적 사명을 위해 신앙적 성숙과 훈련을 이뤄나가길 기대하며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따라서 선교적 성경읽기는 필연적으로 우리를 둘러싼 문화와 이웃들 그 가운데서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앞서 밝혔듯 서구의 기독교 중심 사회가 무너지면서 근래들어 북미를 중심으로한 서구 교회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새롭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세상의 주류가 아니며, 성도들은 낯선 땅에 파송된 선교사와 비슷한 환경에 놓여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현실적 상황으로부터 나온 인식이기도 하지만, 사실 성경이 교회들을 향하여 끊임없이 외쳐온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어려운 환경이 본질적 메시지를 발견토록 도왔을 뿐입니다.
한국교회가 마주하고 있는 상황이 북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성경이 전하는 선교적 메시지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교회와 성도 각자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다시 발견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삼일아카데미는 선교적 성경읽기 강좌를 계속해서 열어나가려고 합니다. 부디 선교적 성경읽기 강좌들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그리고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열어지게 되길 기대합니다.
*Dean Flemming, "Exploring a missional reading of Scripture: Philippians as a case study", EQ 83.1 (2011), 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