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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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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구원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창조 세계가운데 유일하게 인간만이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죄가 많습니다. 그래서 확실히 인간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동물들 역시 잔인하고 탐욕스러우며 죄가 많은 인간들로부터 구원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모든 국가와 모든 지역의 교회들에게 던져진 새로운 의제입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피조물들을 위한 화해의 목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것은 진심이어야 하고, 동물의 비참한 처지에서 돈을 거는 거래에 도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관심없는)창조적인 신학을 담은 책들이 출판되고 있는데  하나님과 개에 대하여, 창조세계의 순환, 우주적 계약 등입니다.

 

신학적 통찰들에는 신적인 창조성에 대한 경이로움과 두려움, 하나님이 구별된 존재들을 기뻐하시기에 우리 역시 그들을 기뻐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음미, 그리고 특히 동물에 대한 학대로 미결되는 인간의 자만과 탐욕에 대한 지속적인 인식이 포함된다.

 

현재 기독교인들은 마치 동물의 세계가 전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한다. (개 키우라는 얘기가 아니다.  배신 잘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개를 키우면 안 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열의 아홉이 남에게 전가하거나 버린다.)  몇몇 시편구절들과 반대로 기독교인들의 찬양은 오로지 인간중심적인 것에만 집중된다. 동물은 여기에 낄 자리가 없다. 이 배후에 있는 것은 예상보다 더 심각한 영적 빈곤, 혹은 더 정확히 말해 무지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동물에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는 관념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동물을 무시한다면, 우리는 전통적 기독교 사상에 존재했던 신의 태만이라는 개념이 낸 길을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이 개념은 하나님이 인간의 창조주일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생물종들의 창조주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진심으로 이해할 때 더 이상 지탱하기 불가능한 개념이 된다. 

 

또다른 큰 신학적 질문들이 있다. 만약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독특하게 지어진 종 또한 똑같은 사랑의 돌봄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는가? 만약 동물위에 행사하는 인간의 힘이 힘 자체를 정당화하지 않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모범에서 언뜻 보여주신 도덕적 관대함이 - 즉 섬김을 통해 표현된 주권이- 인간의 다른 피조물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서도 똑같은 모델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고 동물을 다스릴 힘을 부여받았다. 이 힘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을 돌보시듯 그와같은 방식으로 동물을 돌보라고 주신 힘이다.

 

"사람은 동물을 사랑할 수 있다. 하지만, 오직 사람에게 주어야 마땅한 애정을 동물에게 주어서는 안된다" - 이 말은 거의 이 세상에는 제한된 양의 사랑만 있어서 우리는 그것을 동물에게 낭비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인간의 복리에 대한 전적인 집착은 이제 확실히 편협한 생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우리는 '완고한 성서 신봉자들' 즉 성서를 들어 동물들을 때리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성서 어디에도 동물들이 단지 인간의 이용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이 지구 전체가 인간이 원하는 대로 맘대로 할 수 있는 인간의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너무도 자주 우리가 마치'선택받은 종'인 것처럼 말합니다. 적어도 나는 우리가 선택받은 종은 맞으나 '다스리는 종'이 아니라 '섬기는 종'이라고 믿습니다.우리들의 소명은 약하고, 자신을 방어할 수 없고, 상처입기 쉽고, 보호받지 못하고, 무고한-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을 대변할 수 없는-존재들을 위해 우리들의 힘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에게는 기독교적 목회입니다. 즉, 모든 고통받는 피조물들을 향한, 그리스도를 닮은 목회입니다.

                                                                                                                                                신학자           앤드류린지    저술

                                                                                                                                 

                                                                                       책 '동물신학의 탐구' 중에서 발췌(내가 감동받고 이해하는 것만 발췌)

 

(어떤 기독교인들은 동물을 죽이는 것을 인간의 특권으로 생각하고 열대우림을 파괴하는 기업들을 지지하며 (열대우림파괴의 이유는 소고기 생산) 무턱대고 하나님이 다 먹으라고 주신거라며 다른 생명의 고통에 대한 양심을 닫아버립니다. 저는 육식주의에 푹 빠졌던 한 사람으로서 그 양심을 회피하는 기재를 너무도 잘 이해합니다. 심지어 (지금은 건강상 문제로 채식주의로 돌아선) 가까운 사이의 목사님은 '하나님이 동물들을 인간이 도살할 때,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끔찍한 고통까지 당하게 하시는 건 아닐거야' 라고 자신을 속이기까지 하셨죠. 저는 영화 '트루먼 쇼' 를 떠올립니다. 도살장에서 지금도 도살되는 동물들의 두려움과 비명과 고통이 하나님의 조작된, 인간의 자비심을 시험하기 위한 장치가 아닐까, 하는 연극같은 생각을 하고싶습니다. 현실에서 육식으로 인해 고통받는 동물들의 처지는 내 능력밖이니까요. 내가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고작, 채식주의자로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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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재홍 2016.02.05 11:05
    저..궁금한게 있습니다.

    말씀하신 '동물'에 '물고기'도 포함 되나요?

    저는 18진 2팀 17기 김재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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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미 2016.02.10 15:19
    예수님도 구운 생선을 드셨다, 는 말씀을 하고 싶으신 듯 합니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았던 당시, 얼만큼의 비육류 요리가 존재했는지는 모르지만, 얼마만큼의 선택사항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http://hgc.bestiz.net/zboard/view.php?id=ghm2b&page=5866&sn1=&divpage=38&sn=off&ss=on&sc=off&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3208

    이 동물보다는 우리의 마음이 더 따뜻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말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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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광 2016.02.06 07:24
    동물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시는 것은 좋은 일인 것 같습니다. 다만 그것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나 언급은 제가 알기로는 없다는 것이 정설인 것 같습니다. 즉, 성경은 동물의 생사 여탈 학대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동물 애호가 이셨다면 쥬이쉬의 제사 방법이 그런 식으로 유지 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담이 처음 죄를 지었을 때에도 어린양을 그런 식으로 죽이지는 않았을 터입니다. 그렇담 아직 어린 양을 그렇게 죽이는 것이 학대인가 하는 것에는 많은 이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성경에서는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적으로 말입니다.

    동물이 제2의 가족이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동물 특히 애완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높아 지는 것은 사실이고 몰상식한 도축과 도산등에 - 품질을 위해 산체로 가죽을 벗기는 토끼털등 - 가해지는 것은 생각해볼 여지가 있으나 그것에 대한 성경적인 가치는 무쓸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잔인한 자본주의적 신학속에 그들을 그렇게 대놓고 판단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에 반대하는 성경 구절을 찾기는 불가능 하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성경의 기준 그대로를 현재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성경은 여성을 대 놓고 비하하고 있고 - 숫자에 들지 못하는 - 차별들로 얼룩저 있고 노예제도에 대해 별 비판도 없으며 이를 넘어서 잔인한 학살 - 성의 어떤 생명도 살리지 말고 다 죽이라 - 아브라함과 다윗의 말년에 한 현재의 기준으로의 소아성애등에도 특히나 다윗의 혼전 성관계등의 난잡한 성문제에 대해서도 별로 문제 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의 문화가 그랬고 거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관습적 허용에 대해 관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문화가 달라지면 거기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지만 성경에는 인간들의 문제나 인권과는 달리 동물에 대한 관심이나 의견이 전무 하다는 것입니다. 있다면 어떻게 하면 피를 잘 빼네서 정결(그들의 기준으로) 하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관심이 전부 입니다. 그렇게 해서 쥬이쉬 랍비의 인증을 거친 것이면 거리낌없이 소비하죠.

    미국에서는 채식주의자들 중에 위의 이유로 체식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실천하는 그들도 주류의 입장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닌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고 육식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라는데 있습니다. 한가지의 선택사항일 뿐입니다.

    그렇기에 개인적인 감명은 이해하고 동물들에 대해 사랑의 마음을 가지는 것은 이해하나 그렇다고 반대 편에 있는 사람들이 비 성경적인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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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미 2016.02.10 15:34
    인간의 죄를 즉, 죽음을 대신한 생명의 제사, 그것이 동물살해였습니다. 바꾸어 해석하자면 그 동물은 내 생명의 가치라는 뜻입니다. 나를 대신하여 식물을 죽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동물을 죽이라 하셨습니다. 죄 없는 동물을 말입니다. 그들은 고통스럽게 죽임을 당했고, 그리고 그 고통은 예수님이 살해당한 십자가의 전례를 대신하게 합니다. 99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마리의 양을 찾으러 간 목자되신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다면.. 우리는 동물살해가 전재되어야 하는 육식에 대해 그리 기쁜 마음만 가질 수는 없을겁니다. 성경적이냐, 성경적이지 않냐, 하는 신학적 논쟁은 자신없습니다. 저는 성경을 잘 알지 못합니다. 5독을 했으나, 양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한 채식을 한 때로부터.. 정직한 마음으로 읽으려니, 어떻게 이렇게 이해 안 되는 신약을 5독이나 할 수 있었을까.. (요한복음 읽다가 두 구절에 하나씩 질문이 생겨서..지금 포기한 상태입니다. 구약도 마찬가지죠.) 무슨 뜻인지 모르고 부지런히 읽은 것 뿐이죠..
    성경으로 돌아가고, 성격적이어야 하나, 내겐 자유의지와 양심(동물에게도 있습니다-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ohoon&logNo=220131055801) 도 있으므로 동물들끼리도 서로 베푸는 온정과 사랑과 의리와, 또 사람을 향한 그들의 헌신을 육식으로 되갚지 말자는 겁니다.

    (저는 너무 지나친 육식주의자였던 과거의 습관 때문에 일년 중 한 두번, 몸이 너무 힘들 때면 갈비탕(주인 때문에 고기 못 먹는 여덟 애들을 위해 고기는 따로 챙기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고 싶고, 찜닭의 당면을 먹고 싶어, 정말.. 한 두번.. 먹으러 갑니다. )

    주신 의견에 대해선 저도 별 다른 이견이 없습니다.

    개만큼 진실하고 의리있고 순수하지 못한 인간들이 궤변스럽게도 개, 자를 욕으로 쓰는 한국사회에서 생명의 소중함을 말하기란..참..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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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지현 2016.02.10 23:49
    저도 요새 이 문제로 고민한 적이 있어서 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세부 논점은 열 가지도 넘지만 그 중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람에게 마땅히 주어야 할 애정을 동물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는 명제에 저는 동의합니다. 하나님께는 무제한적인 사랑이 있지만 인간에게는 제한된 사랑만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의 '우선적' 대상을 명시하십니다. 과부와 고아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우선적 관심의 대상입니다. 먹고 먹히는 자연계에서 동물 개체들이 겪는 고통을 실제 수준에서 판단하고 공감하고 이에 적절히 보상할 수 있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시키신 일, 곧 이웃 사랑에 집중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인간의 자연에 대한 통치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시공에 제한된 존재로 결국 이 선택에 치중하면 저 선택을 놓치게 됩니다.

    동물의 고통에 유독 관심을 가지고 불살생을 제1계로 삼는 불교나 몇몇 동물을 인간보다 높이는 힌두교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어느 유명한 종교학자는 평화적인 인도 종교가 견고한 신분제를 낳았다고 지적합니다. 동물을 의인화하거나 심지어 신성화하는 문화는 상대적으로 인간의 문제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불교는 공의 이타성을 말합니다. 자연과 인간을 구별하여 인간을 우선시하는 저급한 인간중심윤리가 아니라 아무 것도 구별하지 않는 무아를 구현하여 인간과 자연 모두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공의 이타성을 실천하기 위해 출가한 승려들은 속인들에게 그저 불보로 신성화될 뿐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거의 방조하다시피 했습니다. 약자들이 당하는 핍박을 구조적 폭력의 결과로 보기보다 카르마 교리를 통해 개인의 책임으로 날려버렸습니다. 신성화된 자연은 카르마를 매개로 인간 사회에 신성성을 전염시켰습니다. 사회 구조가 그런 것은 사회가 도덕적으로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구성원 개개인들이 쌓은 업에 대한 우주의 응답이 그러하기 때문이므로, 절을 더 짓거나 불공을 쌓아 악업을 감소시키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불교 문화권에서는 절과 탑은 무수히 세워졌지만 사회개혁은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주된 원인을 사회윤리에 대한 관심 부족에서 찾는 학자도 있습니다. 동물애호와 인간애는 얼핏 사랑이라는 큰 주제 안에서 조화되는듯 보여도 실제로는 경쟁 관계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간은 동시에 두 가지에 관심 갖기에는 그릇이 작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채식주의 명령을 하지 않으신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종류의 일은 하나님께 맡기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현재에도 저는 동물애호가들이 인간 이웃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눈에띄게 앞장서고 있다는 증거를 잘 보지 못합니다.

    십자가의 윤리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우선적' 관심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예수님 자신이 사회로부터 배제되고 살해당하신 희생양이셨습니다. 너희 중 소자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특정 대상을 우선시하지 않고 나와 너의 구별이나 인간과 동물의 구별을 거부하며, 동물의 고통까지 염려하는 광대한 부처님의 자비에 비해 일면 도량이 좁아 보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의 자비는 너무 광대하고 너무 한이 없어서 그저 찬탄의 대상으로 치부됩니다. 예수님은 그런식으로 찬탄의 대상이 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와 마치 어머니가 아이 손을 잡고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듯, 우리가 행해야 할 일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성실한 목수셨고, 병자를 치유하셨고, 굶주린 자를 먹이셨고, 종교적 폭력을 고발하다 탄압받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자연보다 훨씬 크시면서도, 광대한 우주가 아니라 우리가 목마른 자에게 건네는 한 잔의 물을 영원히 주목하십니다. 그렇게 우리 관심의 대상을 제한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님의 명령을 행할 수 있으며, 그렇게 행할 때 천국이 임한다고 믿습니다. 삼겹살을 보고 우리가 우선적으로 떠올려야 할 대상은 도살당하는 돼지가 아니라 이런 음식은 꿈도 못꾸는 가난한 이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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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광 2016.02.13 07:05
    좋은 글입니다. 성경적인 하나님의 관점에 대해 잘 쓰신 것을 보고 몇가지 관점들을 배워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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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미 2016.02.23 15:56
    저는 오히려 배고픈 아이에게 더 먼저 관심을 갖고 대학교 1학년 아르바이트 비용을 처음 받고는 후원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한국이라는 지옥에 있는 동물이 눈에 들어온겁니다. 물론 사람보다 동물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요..아마 저도 그럴지 모르겠습니다. 최약자인 동물들의 생명을 돌아보는 성숙한 사람의 생명은 정말 귀한데.. 생명을 우습게 보는 대중들은..글쎄요. 말하기 싫네요. 사랑은 나뉘거나 모자른 게 아니어서, 동물을 돌보는 사람들이 사람을 후원하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울고 있는 여자를 지나치는 많은 사람들 중에 그 여자에게 다가가 사정을 들어본 사람도 우리 유기견 입양팀원이었고요, 우리 행사를 하다가 남들이 도와주지 않는 사람들을 도울 기회만 되면 도와줍니다.
    자기개만 이쁘다고 하면서 다른 동물은 신경쓰지 않는 육식주의자를 동물보호가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동물애호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동물을 위하는 행동과 희생만큼의 절반의 절반도 사람을 위하지 않는 인간들이, 돈 안 드는 기도는 해 줄줄 알면서, 동물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라고 말할 때, 저는 역겹습니다. 입양캠패인장이나, 개식용반대 캠패인을 하다 보면 무례한 사람들과 예전에는 종종 부딪치는데(지금은 인식수준이 나아졌는지 시비거는 사람이 없음), 한다는 소리가 개한테 잘할 여력 있으면 너네 부모한테나 잘하라고 합니다. 아니면 사람한테 더 신경쓰라고 하던지. 거기에서 진리를 알았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사람을 위하는 사람이 전혀 없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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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영 2016.02.12 07:39
    산상수훈에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고 예수님께서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영적인존재입니다 질투같은 감정은 강아지가 더 정확하지만 감정은 영 도 아니고 자유의지도 아닙니다 악한것은 모양으로도 따라하면 안되겠기에 동물을 학대하면 안되겠지만 동물로부터 효용을 얻는것은 허락된일입니다 피조물동료라는건 왜 아들을 죽이셨는지의 의미를 속죄의 의미를 희석하는 것이고 동물에 대한 애정이 우상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단계입니다 동물신학과가 만약 있다면 수의과대학의 하부이지 신학대학은 아닙니다

    우리 몸은 육식을 전제로 창조되었습니다. 필수아미노산은 안먹으면 죽습니다. 하나님이 실수로 필수아미노산을 만드신게 아닙니다. 류신은 쇠고기에서 섭취해야 하구요. 소를 번제로 드린다는건 인간에게 중요한걸 드리는것이고, 희생을 가르치고 인류의 구원을 차츰 가르치기 위한 것이지, 소가 인간의 목숨을 대신하니, 소를 먹지 않아서 인간이 죽어도 된다는 나름 합리적인 인과적 모순을 초래하기 위해 바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육식은 반드시 하셔야 합니다.
    진리 안에서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창조섭리대로, 활력을 가진 몸으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할 활동을 하시는 것이, 그리고 살아있는 삶의 기간을 헛되이 버리지 않는 것이, 필수아미노산으로 성령이 들어오실 이성의 자리를 만드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죄 아니라고 하신걸로 자기를 정죄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모가 그거 죄 아니라고 해도 스스로를 자학하는 아이를 보는 부모의 심정은 어떨까요? 채식으로 하나님을 괴롭게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성도님들께서 걱정어린 답변들을 길게 길게 쓰시는 데에는 진리와 거룩함(구분됨)의 문제에 대해 혼동을 일으키는 매우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일 겁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이 많지만 사람이 다 개만도 못한건 아닙니다.

    저와 글쓰신분은 거룩해 져야 합니다 명령이고 자유의지로 그것을 따르기로 했기 때문 입니다.
    피조물동료?인 개는 그것을 할 수 없습니다.
    개를 사랑하는 그 사랑은 애착 내지 어태치먼트라고 합니다 성경의 사랑은 그게 아니구요. 성령님께서 마음에 들어오시면 진리에 의해 구분되고 거룩해질 것입니다 구분이 흐리면 안락사 낙태, 사이보그, 키메라인간 (동물신학이면 충분히 연결됩니다) 등 여러가지 문제에서 마귀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이성의 인과적 모순과 진리를 잘 구분하게 하실 것입니다.

    반성경적인 컨텐츠 같아서 살펴 보니 아니나 다를까 앤드류 린지는 신학자도 아닙니다.
    성공회(영적으로 흐린 곳이죠.. 헨리8세가 바람피려고 만든 교단)에서 아카데믹한 세그먼트 하나 창조했다고 인정한 것에 불과합니다.
    창조적 신학은 창조 경제 같은거에요 그 창조가 창조가 아니고 동물신학도 신학이 아닙니다.
    이런내용이 신학이라고 어린 학생들에게 퍼지면 파급효과는 꽤나, 기복신앙만큼 파괴적일것입니다.(사망의 길입니다..진정..)



    정리하면,
    1. 인간은 영혼육의 조화를 이루도록 창조되었고, 육식을 하도록 창조되었다.
    2. 육식을 하지 않으면 생의 기간이 매우 쓸모없어지고 생각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게 되어,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본질에 반하는 삶이 된다.(판단력도 점차 떨어진다)
    2. 개는 영적인 존재가 아니다.
    3. 동물신학은 신학이 아니다.
    4. 육식을 이유로 타인이나 자신을 정죄하는 것은 분명히 죄이다.
    5. 육식으로 섭취하지 않으면 죽는 필수아미노산 종류: 발린, 류신, 아이소류신, 메싸이오닌, 트레오닌, 라이신, 페닐알라닌, 트립토판
    6. 개는 영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유의지도 없다. 개로 모든 성경을 연역적으로 해석하면 사망의 길 뿐. (남을 정죄하고, 자학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희석하고, 정치와 사회의 문제에서 마귀의 편에 서게 되어도 구분이 안되고 등등)
    7. 문자와 육식을 창조하지 않으신 경우의 우주라면 하나님은 인간에게 뜻을 전할 생각이 없으셨을 경우 뿐입니다.

    문장으로 정리하면
    개를 중심에 두고 성경을 읽으면 유대교(구약)는 동물학대교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절이 더 좋아질꺼에요.
    그래서 우상의 단계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에서 동물신학에 이런식이라면, 다 개보다 못한 인간들이 신학을 호도한다고 하는 사람도 생길 것이고 그것 때문에 교회가 싫어지는 수준의 어린 학생들도 생겨날 것이거든요.
    육식을 안하면 생각은 계속 짧아질겁니다.
    육식은 그 맥락으로 볼 때 하나님의 명령에 가깝습니다. 베지테리언만큼 매력적이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반하시지는 않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영적으로 흐린 것에 다 같이 회개 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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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광 2016.02.13 06:57
    개인적으로 김권영님의 글에 제가 다시 답변하고 싶은 많은 내용이 체계적으로 있으니 더 이상의 답변은 저로서도 큰 의미는 없고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주께서 주실 확신의 단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온라인상의 언급은 피하겠습니다.

    다만 김권영님이 신학적인 면과 성공회에 대한 내용은 상당히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신학은 온전한 것도 완전한 것도 아니고 불변의 진리도 아닌 것이기에 시대가 변하면 가변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문제 대해 논의 되는 것이 궁극에는 시대 상황의 변화에 올바른 신앙의 형성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문제는 논의의 대상이 되는 것에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난제를 탓하기 보다는 난제를 해쳐 나갈 수 있는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이 믿음의 행동이 아닌가 합니다.

    성공회에 대한 이러한 판단들은 한국 개신교만 벗어나서 해도 상당히 무안한 생각입니다. 그 때 당시의 영국 상황과 왜 그렇게 케톨릭이 성행 하던 곳에서 그 많은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성공회가 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아신다면 그런 비난을 하시기 힘들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서는 불륜만 강조할 뿐 그 배경이 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가르쳐 주지 않죠. 그 내면에는 상당히 국가간 종교간(구교, 신교) 경제문제(종전 후 피폐해진 영국)복잡한 정치적 상관관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범죄로 얼룩진 한국 개신교 합동에 적을 두는 교회에 다니시면서 그런 비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잘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역사상 그 어떤 타락한 시대에도 듣지 않았던 '개독교'라는 비판을 받는 입장에서 다른 종파를 판단하는 것은 숙고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영성이 어둡다고요? 거짓말에 능한 한국 개신교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한국 개신교에도 많이 읽히고 있는 의도적인 오역으로 논란을 받은 적이 있는 '제자도'의 저자 존 스토트도 성공회 신부입니다.

    인터넷 처보시면 존 스토트를 목사라고 거짓말하는 많은 개신교 웹사이트를 볼 수 있습니다.

    성공회 신부 한번 만나서 이야기 해보지도 않고 성공회를 비난하는 사람의 말을 듣기 보다 성공회를 편견 없이 경험하거나 만나서 이야기 해보신 후 그런 판단을 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합니다. 원하시면 자리를 주선해 드릴 수 있습니다. 대화는 주로 천주교 성공회에서 보다 개신교가 - 교육적으로 좀 열등한 (좁은) - 더 두려워 할 뿐이지 시간 약속만 한다면 별 무리없이 만나 주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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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영 2016.02.13 08:37
    교단 각자 다른 부분의 흐림이겠고, 교단=개인 은 좀 과격론 같습니다. 앵글리칸처치는 꽤 오래 다녔습니다. 신학이 인문과학이 아닌이상 진리가 아닌 것은 이단의 도그마 정도가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저 역시 과격론이죠) 결론부분은 저에대해 오해하셨나 싶습니다. 평안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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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광 2016.02.14 02:23
    네. 그 신학적 도그마에 대해서는 교단마다 다른 면들이 있기에 함부로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라는 생각입니다. 다만 저도 님과 같은 주장을 하다가 직접 성공회 신부들과 만나 이야기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에 놀라면서 좀 무안했던 제 과거의 일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야 그들이 나쁜 넘들(?)일 수록 상대적으로 개신교에서 신앙의 선진이라 생각하는 - 그들이 지금 개신교를 보면 과연 그것이 맞다고 생각할 지는 모르겠으나 - 퓨리탄들이 더 부각되기 때문에 저같이 만연한 개신교쪽 이야기만 가지고 판단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 되어 오해 한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하고 한주 승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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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세미 2016.02.23 15:28
    아직도 인간에게 필요한 영양 요소를 육식에서만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분이 계시군요... 아...
    육식에 대한 이해와 채식에 대한 이해를 더 가지셔야 할 듯 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김권영님의 말을 듣고 혹해서 육식하다가 다른 분들처럼 병나면 어쩝니까.....제가 설득하기에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이 한권의 책으로 대신합니다.


    "조화로운 삶" 입니다.

    말씀대로라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시고 채식주의로 만드셨던 하나님의 처음 생각이 틀린거군요. 어디까지나 개인의 주장이려니 하렵니다. 객관적 사실인것처럼 말씀하실 때는 좀 더 보완된 정보를 들이미실 필요가 있을 듯 합니다.

    김권영님이 꼭 읽으셨으면 하는 책은 '조화로운 삶' 입니다... 우유나 고기의 미화된 영양학적 이유들이 축산업에서 발표한 자료들이 주류였고, 그런 것들을 따지지 않고 수용한 사회가 주입식 교육 우리나라 아닙니까. 90%의 한국인들이 (삼일교인들을 포함하여) 산채로 벗긴 너구리털 달린 후드패딩 입고 다니는 거 보십시오. 따지지 않고, 생각하지 않으니.. 생명에 대해 개념자체가 없는겁니다. 온 나라가 고기집이니 병원이 잘 되야겠지요. 놀고먹던 친척분이 갑자기 돈이 생기자 고기를 즐겨먹고는 심장마비로 돈 생긴지 1년여만에 멀리 가셨습니다. 갑자기 그 분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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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권영 2016.02.12 13:06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고린도전서 2:14

    The man without the Spirit does not accept the things that come from the Spirit of God, for they are foolishness to him, and he cannot understand them, because they are spiritually discerned.
  • ?
    강길모 2016.02.12 16:27
    전에도 이와 비슷한 글을 올리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정말 엄청나게 위험한 내용입니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혹시라도 아이들이 이 글을 보면 어떻게 하나?'하는 공포심마저 생깁니다.

    특히나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은 고기를 무척 좋아하고 저도 가끔 사주는 편인데,
    막 신앙이 자라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엄청난 혼란을 줄 수도 있는 글이네요.

    이런 글은 게시판 관리자의 권한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제~~~~발! 위에 김권영 집사님의 댓글을 정독해보시고 정신 좀 차리시길 바랍니다.
    이런 글을 쓰실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성경을 읽는 것이 자매님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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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광 2016.02.13 06:43
    강길모님 이런 문제에 대해서 나누라고 있는 곳이 자유 게시판이 아닌가 합니다.

    잃은 양의 비유중 잃어버린 양에 가장 가까운 분은 그 아직 발생하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문제가 아닌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저자 분이 아닌가합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날시에 그 문제에 대한 해결을 미연의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현재 개신교의 신학은 반지성주의로 인해 그럴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그 이이들도 이런 고민에 빠질 충분한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이런 문제에 대해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결국에는 더 나은 해결 방안이라 생각됩니다.

    눈가리고 귀닫고 믿음을 주장하던 시대는 지나 갔고 이런 인터넷 시대에 그 아이들을 더 이상 묶어 놓을 방안도 없으니까요.
  • ?
    강길모 2016.02.13 16:52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죠? 다시 한번 정독해보시기 바랍니다.

    제 의견은 '이런 글은 관리자의 권한으로 제제를 가해야 한다!'가 아니라 '관리자의 권한으로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위험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비단 이런 글 뿐만 아니라 훨~~~씬 심한 므흐흐한 영상에 아~주 쉽게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사이트)에 올라오는 글이나 사진들은 아이들도 애초에 나쁜 사이트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자기가 다니고 있는 교회 게시판이라면 얘기가 다르겠죠?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는 의미입니다.
  • ?
    송인광 2016.02.14 02:46
    민주주의에서 자유로운 표현(자유 게시판)에 대해 공권력(관리자 권한)을 투입할 정도의 위험성을 언급하는 듯한 느낌을 받아서 그렇게 이해 했습니다. 글로는 저자가 어떤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하는지 파악하기 힘들기에 생긴 오해 인듯 합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것 처럼 말이 글로 세겨지는 순간 죽은 것이라 할만큼 말과 글에서의 차이가 있고 또 글을 읽는 쓰는 사람은 글을 읽는 사람의 의도를 글에서 밖에 읽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주장을 강조할 많은 표현 중에서 그 표현을 선택한 것은 저같이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 아닌가 합니다.

    고등학교 첫 국어 수업 시간에 중등 국어와 고등 국어를 나누는 차이점에 대해 선생님께서 설명 하시길
    "중등국어에서는 "아"의 의미의 표면적인 이해의 중점인 반면 고등 국어에서는 "아"의 내면및 이면의 이해도 포함 된다."는 말처럼 고등국어에서의 읽기의 표현에 있어 혼선이 오기 쉬운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조금 더 읽는 사람을 배려 해주신 다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말하고 싶은 의도는 알았으나 제 관점에 대해 변화는 없을 듯 합니다.

    이분의 주장이 왜 므흣한(?) 영상들과 관련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말씀 드린데로 그런 주장에 대해 해악을 무조건 차단하는 것 보다 오픈하고 거기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을 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네덜란드 같은 경우 성에 대한 모든 것을 공개 하고 있지만 성범죄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가 되었듯 말입니다.

    평안 하세요.
  • ?
    한세미 2016.02.23 15:41
    아이들에게 정직한 양심의 눈이 떠지면 어쩌나,, 그런 걱정이 드신다고요? 걱정마세요. 아이에게도 양심을 덮는 방어기재가 있어요. 눈 앞의 고기가 살아 숨쉬는, 순수하고, 자연을 즐기는, 인간 친화적인 동물이었다는 것을 점점 외면하다가, 나중에는 아예 생각도 안 드는 .. 그런 당신과 내(십년전의)가 되는거죠. 별 걱정을 다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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