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사랑]
(벧전3:8)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성경 전체를 축약해서 두 문장으로 요약 한다면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라 할 수 있다
(마22:37~3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하나님 사랑]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웃 사랑]
- 둘째도 그와 같으니
☆☆☆ 하나님사랑 = 이웃사랑(형제사랑)
즉 이웃사랑(형제사랑)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계명의 완성인 것이다
-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이니까?
(눅10:29~37)
-그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 둘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여행하는 중에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 그 이틑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율법사의 질문과 예수님의 답변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율법사의 질문은
(눅10:29)율법사의 질문 :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눅10:36)예수님의 답변 : 누가 강도 만난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 내가 주체인 율법사의 질문 vs
강도 만난 자가 주체인 예수님의 질문
♢ 나를 기준으로 이웃을 정의 하는 것이 아니라
강도 만난 자를 기준으로 내 이웃이 정의 되어야 한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주는 나!!!
♢내 이웃은 누구일까?
내 주변에 강도 만난 자가 누구일까?
내 주변에 있는 그 누군가가 아닐까!
고통중에 있는, 슬픔중에 있는, 고난중에 있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그 누군가
그래서 평강이 없는자
내 주변에 강도만난 형제가 있지는 않는 가!
우리는 율법에 충실한 레위인, 제사장이 될 것일까?
사마리인이 될 것일까?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롬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산 제물은 모두 삶의 실천을 말한다
말만 잘하는 nominal christian(명목상그리스도인)이 되지말고
삶으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다
강도 만난 자와 같은 세상을 향하여 우리에게 이웃으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는 것부터
선교도 전도도 출발이라 생각해 본다.
하나님사랑!
형제사랑!
거룩한 산 제물!
☆언제나 속 시원히 가르치는 성서학당
베드로전서 강해말씀 중에서☆
다만, 요 1:14의 말씀이 육신이 되어에서 이 말씀은 요 1:1의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 자신인 그 말씀입니다.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지요.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말씀은 절대로 삶의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예 다른 어떤 해석조차 허용하지 않는, 완벽한 예수님의 성육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난 번 회개에 관한 글과 더불어 의도치 않게 형제님의 글에 딴지를 거는 것처럼 되었습니다만..
틀린 건 틀렸다고 말씀드려야 할 거 같아서 댓글을 남깁니다.
형제님의 글은 유익하게 잘 읽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