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여름 제19차 대만선교를 마치고..
2진 마포2목장의 최승돈입니다. 교회에서 강조하는 일은 힘닿는 데까지 다 해 보자는 생각을 갖고 태어나 처음으로 (대만) 선교를 다녀왔습니다. 우선 상상치 못한, 큰 은혜로 1주일 내내 함께 해 주신 하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사림 진리당' 팀 소속으로 제가 특별히 맡았던 일은 '한국어 교실'이었습니다. 선교 약 3~4주 전 대만 연계교회에서 제안이 왔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확정된 것은 아니라고 해서 그냥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교 떠나기 불과 1주일 전 '준비는 잘 되고 있느냐?'는 팀장의 느닷없는 질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아득~'
부랴부랴 회사 동료들의 감수도 받아가며 교안을 짰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마무리할 수는 없었습니다. 같은 수업을 며칠씩 반복해야 하는지, 아니면 같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며칠에 걸쳐 각기 다른 수업을 진행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연령의 어떤 사람들을 상대로 수업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기에 교안은 없지 않아 있는 것이었을 뿐이었고 의지할 것은 하나님의 은총밖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막상 현지에 도착했는데 한국어 교실 문제 말고도 꼬이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애초 우리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게 같은 팀 선교대원이었던 서대영 간사의 얘기였습니다.
원래 연계교회인 사림진리당을 중심으로 활동을 하고 남세각의 지교회도 돌본다는 것이 우리의 계획이었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사림진리당은 거의 숙소로만 쓰고, 아직 교회가 제대로 존재하지도 않는 '남세각' 지역 선교를 집중적으로 펼치는 것으로 계획이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원래 본교회와 지교회에서 각각 한번씩 두 번 하기로 돼 있던 공연도 본교회에선 다른 일정과 겹쳐서 하지 못하고 남세각에서만 학교 시설을 빌려 한번만 하기로 했습니다. 대신 제가 하기로 한 '한국어 교실'은 세 번에서 네 번으로 횟수가 대폭(?) 늘어났습니다. 서 간사께서는 '한국어 교실이 갑자기 중심 사역이 되었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첫 수업은 화요일 오후 2시였습니다. 숱하게 전단을 돌렸지만, 오는 사람이 하나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볼 때 그게 정상일 것만 같았습니다. '거의 다들 처음 와 본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 손에 난데없는 전단을 마구 쥐어 준 것뿐인데... 이미 교회가 들어서 있는 곳이라면 교회 아이들이라도 몇 명 와 줄 텐데... 수강생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런데 놀랍게도 9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어 교실을 찾아와 주었습니다. 수강생의 연령대는 수업하기 정말 애매하게 10대 5명에 60대 4명. 그래도 주님의 은혜를 믿고 기도와 함께 담대하게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주님, 오늘 이 자리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뿐만 아니라, 새로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원합니다."
사람들은 기대 이상으로 진지했습니다. 기탄 없이 질문과 대답을 주고 받으며 뚝딱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강생과 도우미였던 선교대원들 모두 기분이 무척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제부터. 만족한 수강생들이 다음 날 또 올 것에 대비해야 했습니다. 밤잠을 줄여 가며 두 번째 수업 교안을 만들었습니다. 선교 사역이 회사 생활보다 힘든 게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날, 두 번째 교안은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이틀 연달아 온 사람은 자기 표현을 별로 하지 않는 남자 고등학생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학생 말고 새로운 사람으로는 세 명이 더 왔는데 그 중 둘은 초등학교 3-4학년 남자 어린이였고 또 한 사람은 한국을 한번 다녀간 남자 대학생이었습니다.
사람 숫자만 보고 사실은 실망을 좀 했습니다. 수업도 전날과 거의 정확히 같은 내용. 하지만 이 날은 우리의 대화가 깊어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가정이 불교 집안이라 예수를 믿지 못하겠다는 대학생. 그런데 마침 현장에 지원을 나온 대만인 교역자가 불교 집안 출신이어서 마음 가운데 큰 파문을 일으키는, 가슴 뭉클한 간증을 해 주어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 역시 불교 집안에서 혼자 교회에 나오고 있는 우리의 팀장 박정현 자매도 큰 구실을 했고...
셋째 날엔 또 다시 큰 부흥을 맛보았습니다. 무려(?) 11명의 수강생이 한국어 교실을 찾은 것입니다. 앞서 이틀 연달아 왔던 고등학생은 이날도 출석, 개근 행진을 계속했고, 불교 집안의 대학생과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연달아 출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초중고대학생들...
사실 교회도 없는 지역. 게다가 우상 숭배로는 거의 최고로 손꼽히는 지역에서 부족한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하려다 보니 꼴이 참 우스운 게 사실입니다. 다른 동네 교회에 출석하는 어느 성도 소유의 약국 2층 다락방을 빌려서,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모두 방바닥에 앉아 한국어 교실을 진행하는 모습. 상상이 잘 되나요? 심훈의 상록수라고나 할까?
셋째 날 수업은 현지에서 제작한 새 교안에 따라 새로운 내용으로 심화돼 진행됐고, 이제 저는 넷째 날 마지막 수업을 하기 위해 또 다른 교안을 짜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한국어 교실 분위기는 지극히 고조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태풍이 왔습니다. 대만 사람들은 태풍이 오면 먹을 것을 실컷 싸들고 집에 들어가서 좀처럼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현지에 와서 수정된 계획에 따라 난데없이 한번을 더 하게 된 한국어 교실. 분위기가 많이 고조되긴 했지만, 태풍이 불어오는 날에 맞이하는 마지막 수업엔 영 자신이 없었습니다.
마지막 수업엔 두 명의 학생이 왔습니다. 사흘동안 개근을 한, 그 말 없는 고등학생. 그리고 불교 집안의 (한국 여자 연예인 좋아하는) 그 대학생. 이들은 그야말로 태풍을 뚫고 한국어 교실을 찾아와 함께 소통하며 구원을 향해 가는 우리 한국어 교실의 기둥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냥 한국어만 열심히 가르치고 말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물을 여러분들에게 주고자 하는데 내가 불편한 마음을 갖고 주저할 까닭이 무엇인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을 영접하라."
성령께서 한국어 교실에 충만히 역사해 주시었습니다.
태풍이 부는 날. 교회가 없는 마을에서 교회 개척 사역의 대미를 장식하는 공연을 벌였습니다. 세상 가운데서 얻은 저의 똑똑한(?)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애써 이 공연을 찾아올 사람은 거의 전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숱한 사람들을 '한국의 밤'에 오게 하셨습니다. 이 가운데 한국어 교실 수강생은 마지막 날 수업 출석 여부와 상관없이 거의 100%의 출석.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야 했기에 관객 동원에 있어 더욱 효과적이었습니다.
공연을 위해 필요한 사람을 선발한 것도 아닌데 공연은 어떻게 이렇게 잘도 하는지... 선교대원들의 활약은 그야말로 눈부셨습니다. 한국 음식을 먹으며 오랜 시간 기쁨으로 대화를 나누는 사람, 또 사람.
변변치 못한 수업이었지만, 나흘 내내 출석한 고등학생 '이린'이는 이 날 하나님을 영접하고 교회 생활을 시작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이린이가 빗속에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갈 때 저는 제가 아는 중국어 인사를 모두 다 했습니다. 태풍 가운데 굵어진 빗방울이 제 눈물을 감춰 주었습니다. 다음 선교 때 우리와 함께 사역을 펼치며 간증을 해 줄 이린이를 기대해 봅니다.
모든 사역을 마친 뒤 저는 남세각 전철역에서 27기 감치훈 형제에게 이제 남세각도 마지막이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감 형제는 "마지막이라뇨? 겨울에 또 와야죠?"라 했습니다. 우리가 장난 삼아 남세각이라는 호를 지어준 우리의 막내, 감치훈 형제. 주께서 형제의 이름(호) 위에 새 교회를 세우실 것입니다.
여하튼 많이 헷갈리기는 했지만 이번 선교가 제겐 참 좋았습니다. 체계가 더욱 잘 잡히고 더욱 깔끔한 선교를 상상할 수도 있겠지만, 전 그게 궁극적인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볼 때 객관적인 능력이 부족할 수도 있고, 부족한 사람들이 허둥대기도 하지만, 철저하게 -주님을 향한- 동기 부여가 되어 있기만 하면 다 된다는 생각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그래야 저 같은 사람도 선교를 계속 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번에 하나님께서 정말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정말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우린 비록 허둥댔고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에 우리가 그저 가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능력으로 이루어 주시지 않던가요? 그것도 매번 상상치 못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세상에선 우리의 선교와 같은 일을 두고 좀처럼 견적을 내지도 않고, 또 견적을 낸다 한들 견적이 제대로 나오지도 않겠지만, 우린 이 세상의 견적이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또 한 번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빡빡한 일정에 졸리고 힘이 들지만, 이런 선교를 재미있어 하고 좋아하게 된 걸 보면 전 구원받은 게 확실합니다.
한국어교실을 열었던 곳에는 금세 교회가 들어섰고, 몇년째 섬기고 있는 연계교회, 사림진리당은 얼마 전 신축부지를 구입하였습니다. 저는 이제 저의 열네 번째 대만선교를 기도 가운데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사이 하계 올림픽 때만, 도합 딱 두 번 빠졌네요. 선교를 통해 새롭게 만나는 교회 식구는 매번 대략 10~20 명뿐이지만, 교회생활과 신앙생활은 매번 10~20 배 이상 성장하고 커나가는 것을 경험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구원하시는 영혼! 그 기쁨은 말할 것도 없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