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건축을 마지 못 해 허용하셨던, 그 때의 아픈 사랑만큼으로 코로나 사태를 허용하신 아버지!
머리카락 쉐어 빠진 숫자만큼, 교회 안에 있었던 세월만큼 회개하라시던 주님!
올라와서 기도함이 어째서 주위를 더 의식 하게 되는지, 그동안 무심함이 은혜였음을 알게 되네요ㅡ
일터도 사람도 귀천 없이 소명의 현장되라 셨나요?
진정 소명 때문에 서로가 그 소동을 벌인 걸까요?
글을 정리하는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는 안타까움은 서운함으로 보여졌다는 건데 이 안타까움은 저의 의에서 오는 교만인가요?
평택 까지 느닷없이 마중 해 주신 두 전도사님!
배 부르도록 욕먹고, 넘 고생하셨네요.
억지로 십자가 진 구례네 시몬의 복을 받으시겠다요.
로마병정의 벌은 제가 받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