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보고

위로부터 위로비롯되는 위로하는 위로 사진의 주일 보고

by 김지원목사 posted Feb 02,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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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장의 말말말

 

 

부모님의 회심이후, 큰댁에 가는 일은 쉽지 않아 졌습니다.

큰아버지와 사촌형님들은 좋은 분들이셨습니다. 그런데 관계가 서먹해졌습니다.

이 미묘한 감정의 골을 모를 시절을 지나, 뼈저리게 느낄 시절,

이게 사회수업시간에 배웠던 “종교갈등”이라는 거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술 한잔 하시곤, 동생놈이 교회에 빠져 조카들 까지

조상님들 섬기는 복을 못 받게 한다고 그렇게 큰아버지는 크게 큰소리를 치셨습니다.

 

그 싸움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늘 제사가 끝날때쯤 도착을 했습니다.

차에서 내려, 골목길을 올라가, 향냄새가 나는 철문을 밀고,

친척들 신발이 가득한 현관에 다른 신발을 밟을 세라, 까치걸음 하며 들어갔습니다.

친척들은 큰 상을 펼치며, 식사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왜 이제 왔냐는 듯한 퉁명스런 동생들의 핀잔을 뒤로하고

그냥 빙긋 웃으며 음식을 날랐 더랬습니다.

 

대학 때였습니다.

아버지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그 이후로 어머니는 큰댁에 발을 끊으셨습니다.

형은 군대를 갔고, 저는 혼자 큰댁을 가야 했습니다.

가기가 참 싫은데, 그래도 갔습니다. 아니, 가야했습니다.

그게 내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아버지는 때가 되었다는 듯이 말씀하셨습니다.

절은 안해도 좋으니, 제사를 드릴 때, 묵념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저는 죄송하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제사제도를 반대한다고 말했습니다.

음복을 하라고 하셨죠, 저는 목사가 될거라 알코올은 입에 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왠지 그렇게 꼭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아버지의 신앙이 한때 유행하던 교회놀음에 빠진 일탈 정도로

친척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증명하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아들의 도리였습니다. 큰댁에 와야할 이유였습니다.

아버지의 죽음이후, 20여년이 지난 지금 형과 저는 목사가 되었습니다.

부산에 있을때까지, 늘 명절때 큰댁에 들러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깎듯하게, 그리고 바르고, 그러면서도 신앙안에서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올해는 부산 큰댁에 가질 못했습니다.

아내가 끓여준 국과 밥으로 아이들과 단란하게 식사를 했습니다.

너무 평온해서 설이 아닌 듯 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진짜 설인데 말이죠.

 

설에 함께 모여 윳놀이를 하며, 어색한 웃음을 짓던

여러분들과 함께 있을수 있어 좋았습니다.

 

2017년

새해 하나님의 복의 삶을 사시길

새해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삶을 사시길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축복합니다. 함께함이 기쁨입니다.

 

1. 새로운 진개편이 시작되었습니다. 기도로 중보해주세요.

--진예배때 새로운 간사님과 리더 그리고 팀이 발표됩니다.

 

2. 그동안 수고하신 간사님, 리더님들 고생했어요.!! 축복합니다.

 

3. 2월 5일 진예배가 있습니다.

장소 : C관 4층

시간 : 오후 4시 30분

 

4. 진장도 선교가요!!!!

[2017 겨울 해외선교 일정]

(1)대만: 2/6(월)-2/11(토)

(2)일본 –1차: 2/8(수)-2/14(화) -2차: 2/13(월)-2/18(토)

(3)미얀마: 2/11(토)-2/17(금)

 

5. 매주 금요 영성 집회가 있습니다. 함께 은혜받음으로 나아갑시다.

본당 2층 9시부터입니다. 모두 함께해요

 

6. 진장을 만나고 싶은 분 누구나 연락주세요. 달려갑니다.

 

 

예배 : 69

팀모임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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