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는 성혜간사님의 선교로 6팀에서 함께 팀모임을 했습니다.
어설픈 '신정론' 강의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주일의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1. 진장의 말말말
돌아가며 돌아가자
하나님은 늘 그런식이다. 네가 어디 있느냐?(창3:9) 찾아와주시며, 기다려주신다.
창세의 때부터 지금까지 그분의 음성은, 온세상에 가득차며 충만하다.
사실 세상의 만물이 ‘네가 어디 있느냐’ 물으시는 하나님의 단단한 메아리다.
그 하나님은 우리와의 교제를 위해서라면 어떤 대가도 치르신다.
심지어 수치와 조롱을 안겨다 주는 일일지라도, 하나님은 이 여정을 지속하신다.
하나님은 나와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보다 내게 더 바라시는 것이 없다.
그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다.
사랑하시기에 창조하셨고, 창조하셨기에 사랑하신다.
그러나 사랑은 언제나 희생이 뒤따른다.
왜냐하면 사람은 ‘제품’ 이 아닌 인격을 가진 ‘작품’ 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뜻이며,
하나님이 맘대로 조종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타자’로 창조하셨다는 뜻이다.
‘자유’만 이 ‘사랑의 관계’를 낳을 수 있으니 그 길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자유가 거절당할 수 있는 위태로운 결정이었다.
결국 창조는 인간이 거할 자유로운 공간을 위한 하나님의 공간의 ‘내어주심’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어쩌면,
악에 의해 상처받고 망가지는 것을 견디는 ‘전능성’이다.
그 사랑에 압도되어 우리가 자발적으로
그분의 주권에 순종할 때 완전해지는 겸손한 ‘전능성’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초청을 거부하고, 하나님 없는 자유를 선택할 때,
하나님 바깥에서의 자유를 원할 때,
인간은 하나님 떠난 자리의 주인이 되려고 했지만,
외로움과 두려움, 중독, 소음, 분주함이 이 공허함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여정은 끝없는 자기 버림과 자기 부인의 여정이다.
아버지가 바란 것은 아들의 금의 환향이 아니라, 아들이 그저 오기를 바랬다.
아들이 돌아오는 것은 아들에게 죽은 것이나 다름 없던 아버지가 살아나는 일이다.
창조주와의 교제는 이론이 아니라 실제이며,
정보의 교환이 아니라 인격의 대면이고,
나의 성품과 주변의 삶의 변혁이며,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의 재 창조이다.
오늘 하나님과의 교제로 돌아가자
그분의 품으로,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인애 안으로
'신정론' 강의 안에 있는 부분들을 발췌합니다.
묵상글을 못썼네요 ㅜㅜ
2. 해외선교로 헌신하고 있는 지체들을 위한 여러분들의 기도 부탁해요.
(2팀 김희영, 6팀 김성혜, 신나래)
3. 설맞이 4진의 특별 EVENT!!!
명절을 맞아 고향으로 많은 분들이 가시네요.
건강하게 잘 다녀오세요!
남아계신 4진의 모든 분들 함께 팀모임을 진행합니다.
장소는 추후 공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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