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와 함께 음악회를 가다-일렉트릭 사물놀이>
사물놀이를 우리에게 뿐 아니라 전세계에 알린 김덕수씨가 기타, 드럼, 키 보드등과 함께 ‘일렉트릭 사물놀이’를 열었습니다. 타악의 역동성을 잘 알기에 흥분된 마음으로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몰고 공연장을 찾았습니다.
마당놀이를 지향하는 의미에서 공연은 스탠딩으로 진행되었지요. 저는 휠체어애 앉아있었기 때문에, 같이 간 사람들에게 ‘서있기 힘들면 앉아서 봐’라고 실없는 농담을 건넸습니다.
두가지가 정리되었습니다. 하나는 스토리의 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어울림이었습니다.
음악만으로 30분이 넘어가고,귀에 슬슬 지루함이 올 때 등장한 판소리는 단숨에 관심을 모으며 관객들에게 새로운 기대감에 휩쌓이게 했습니다.
이야기의 힘, 스토리의 힘이지요.
드라마가 아무리 영상문화라해도, 궁극적인 힘의 원천은 영상보다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공연을 보면서 유심히 무대 위의 연주자들 위치를 살폈습니다.
크로스 오버를 표방했는데 어떻게 어울리나를 보았습니다.
규칙성이 없이 뒤엉켜있던 이들은 점차 앞에는 기타와 베이스 키보드등 멜로디를 담당하는 서양악기군이 자리잡았고,
괭과리, 징, 북,장고등 리듬을 담당하는 우리 사물놀이들이 뒤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 때 저는 mbc의 <오버 더 레인보우>라는 드라마에서 지현우씨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지현우씨가 속한 팀은 가수들 뒤에서 춤을 추는 안무 팀이었습니다. 누군가가 백댄서라는 말을 하자 지현우씨는 불같이 화를 냅니다. 댄서면 댄서지, 앞 뒤가 어딨어?’ 가수들 뒤에서 그들을 받혀주는 역할만을 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안무팀의 기존 정체성에 대한 거부인 거지요
일렉트릭 사물놀이팀은 멜로디를 담당하는 서양 악기군이 앞에 서고, 리듬을 담당하는 우리 사물놀이가 백에 섰으나 이들의 연주는 서로가 아주 잘 어울렸습니다. 앞뒤가 없었고, 주인공과 반주자가 나뉘지 않았습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한 13:14,15)-예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기 전날 제자들의 발을 닦아 주시고서 하신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태20:28)
일렉트릭 사물놀이는 서로가 서로를 섬기는 연주를 했습니다.
그들의 섬김은 서로가 어울림이라는 조화를 만들어냈습니다.
그 결과 참신한 음악이라는연주를 만들어 냈습니다.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고전12:15)<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2:4-7)
그러나 이런 어울림에도 불구하고,일렉트릭 사물놀이는 수,우, 미, 양, 가중에서 미 정도의 점수에 머물고 말았습니다.서양악기와 사물놀이가 따로 놀았습니다.
서로 음악으로는 화합하지 못해,
서양악기의 유장함도, 사물놀이의 역동성도 서로 섞이지 못한채 어중간한 수준에서 머물고 만 것입니다.
기존음악에 대한 편곡이 아니라, 아예 일렉트릭 사물놀이를 위한 음악을 작곡해서 연주하는 것이 타개책 아닐까 싶습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 것이 나은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