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대청부 4진에 소속되어있는 권대원 형제입니다.
60주년 기념 세미나 강사초청건과 사랑의 교회 교역자들과의 친선축구대회와 관련한 일련의 보도와 SNS상에서의 이슈에 대해서
삼일교회가 비교적 시간을 끌지않고 진솔하고 적절한 대응을 해주셔서 참 감사하고 다행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사안에 대해 처음부터 이런 일들이 구설에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은 있으나 이 정도면 지금까지 물의를 일으키거나
부정적인 이슈에 휩싸인 한국교회의 무시와 침묵으로 일관하는 오만한 반응에 비교해서 적어도 삼일교회는 내부적으로 건강하고 수평적인
소통과 합리적인 대화, 진솔한 사과가 가능한 거의 보기드문(?) 대형교회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는데서 감사하게 됩니다.
참고로 SNS상에서 삼일교회 교역자들과 송태근 목사님에 대한 비판이 비등하게 치솟았을 때
송태근 목사님의 공식 사과문이 게재된시점에 SNS상에서 타교인들의 반응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위의 반응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일반적인 한국교회(대형교회)의 소통없음과 사과하지 않음에 비교해서
삼일교회 내부적으로 긴장감은 있을지라도 적절한 소통과 빠른 대처가 얼마나 신선한 충격을 주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삼일교회도 전임목사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아픔, 교인들의 깊은 상처와 이탈을 경험했기에
이번 사안에 대해서도 똑같은 두려움과 아픔, 우려의 마음이 크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빠르고 진솔한 공식적인 사과를 해주신 송태근 목사님과 부목사님들의 용기에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이번같은 일이 다시 재발하지 않기 위해서 이번 일을 통해 몇가지 생각해 볼만한 지점들을 적어보고자 합니다.
조용히 넘어갔으니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우리가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한다면 또다시 이런 일들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보기에
조심스럽고 송구스럽지만 몇가지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삼일교회는 더이상 '삼일교회'만의 교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찌보면(저는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사소해 보일 수 있고 무시하고 넘어갈 만한 2개의 사안에 대해서 왜 교계의 언론과 여론이 비판과 실망감을 크게 표현했는지는 역설적으로 그만큼 삼일교회와 송태근 목사님의 행보에 커다란 기대감과 관심이 많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형교회가 한국교계에 미치는 참담하리만치 한심한 여러가지 안타까운 모습 속에, 저희또한 전임목사님의 성범죄 사건과 관련하여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앙금과 아픔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과 방해를 뚫고 투명하고 건강한 청빙과정을 거쳐 송태근 목사님이 오신 범상치 않은 이력의 교회입니다. 그리고 송목사님께서 부임하신 후 보여주신 전향적이고 파격적이며 진솔한 사과의 모습,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의 모습, 평양노회에 전격적으로 수차례에 걸쳐 '전임목사에 대한 면직청원'을 제출하신 모습등은 충분히 한국교계에 신선한 충격과 삼일교회 성도들의 찢어진 마음과 영혼을 추스릴 수 있는 뭉클한 감동이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며 저는 아직도 그런 삼일교회를 큰 자랑과 자부심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저의 이런 생각과 기대처럼 교계의 다른 성도들과 목회자들에게도 비슷한 기대감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기대감이 있기에 삼일교회의 앞으로의 행보는 더욱 신중하고, 사려깊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부목사님들께서 올리신 사랑의 교회 교역자들과 친선축구대회가 어떻게 열리게 되었는지 과정을 밝히신 글을 읽어보면,
이런 교계의 기대감과 인식에 대한 사려깊지 못함이 상당히 아쉬웠고, 무엇보다 현재 '사랑의 교회'를 비롯한 대형교회의 여러가지
부패하고 건강하지 못한 모습에 대해 교계와 성도들의 인식이 얼마나 차갑고 날카로운지 '온도차'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
이를 비교하기 위해 마침, 3월3일 LA 중앙일보에 올라온 미국의 대표적인 강해설교가 '존 맥아더'목사님의 인터뷰 글을 잠시 인용해 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존 맥아더' 목사님은 탁월한 성경강해 설교자로 복음적이고 성경적인 설교와 책들을 수없이 편찬하신 분입니다.
마침, 이번 인터뷰의 주제가 [존 맥아더 목사 '한국교회'를 말하다] 여서 인터뷰 내용중에 '사랑의 교회'와 '오정현'목사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부분을 인용해 봅니다.
-한국엔 3억달러(약 3000억원)짜리 교회가 세워졌다.
(최근 한국 교계의 이슈였던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과 서울 사랑의교회 건축 논란을 설명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정말 3억달러가 맞느냐'며 몇 번이나 되묻다가,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답변했다.)
"기독교엔 지금 '거대한 빌딩(empire building)'이 너무 많다. 대개 교회 확장은 목사의 개인적 야심과 연결된다. 많은 경우 목사의 자아가 교회 크기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3억달러 짜리 건물을 세우려 했다면 반드시 동기를 철저히 진단하고, 성경에 따라 자신에게 강력한 질문을 던졌어야 했다. 게다가 학위를 '표절'로 얻었다는 건, 야심적 성향에 대한 증거 아니겠는가."
-비성경적이란 뜻인가.
"현재 한국의 물가나 자세한 사정은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 교인의 편의를 위해 건물을 지었다 해도 상식적으로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한가. 차라리 그 돈으로 세상 구석구석에 복음을 전하고,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는 데 사용했다면…정말 심란하다."
제가 생각할 때 존 맥아더 목사님의 반응이야 말로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삼일교회 목사님들께서는 그리 인식하지 않는 것 같은 '커다란 온도차이'를 느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는 송목사님과 오정현 목사님의 개인적인 친분과 삼일교회 부목사님들의 신중하지 못한 행동이 교계와 타교회 성도들에게 깊은 실망을 주었음은 물론, 지금도 매주 '마당기도회'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사랑의교회'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해 싸우고 있는 수천명의 '사랑의 교회'갱신위 성도들에게 커다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미 주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 부분은 목사님께서 공식사과하셨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 했으니 더이상 거론할 필요는 없으나, 우리가 이번 일을 통해서 배워야 할 점은 삼일교회가 이제 우리끼리만 잘 지내면 되는 교회가 아닌 한국교계 많은 분들의 기대를 안고있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사소해보이는 교회 내부 행사에 강사초청하는 사안부터, 타교회 교역자들과의 개인적인 친선축구같은 행사까지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사려깊은 신중함이 보여야 할 것입니다.
둘째는, 이번 사안이 삼일교회의 건강하고 투명한 소통의 문화에 대해 깊이 고민해볼 시간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전격적으로 발빠르고 적절한 사과를 해주신 것은 다행이나, 처음 이 게시판에 '이번 사안에 대한 목사님의 분명한 입장을 묻는 글'을 썼던 형제가 아무런 사전 통보없이 두번이나 글이 지워졌다는 것은 아직도 '교회 문제는 일단 덮고 보자'는 의식이 교회 홈페이지나 교회를 운영하는 분들의 사고방식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영기 집사님께서도 잘 지적하셨으나 교회게시판의 운영방식에 대해서도 조금 더 심사숙고해서 바꿔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사실 캠퍼스전도 보고서나 매주 주일사역보고서만 올라오는 게시판의 운영방식은 예전부터 개선의 여지가 있어보였습니다. '행정적인' 목적으로만 보자면 '내부 인트라넷'이나 '메일'을 통해서도 그런 보고서는 충분히 공유가능하고, 진장 및 팀원들에게 공개의 필요가 있다면, 각 진별게시판에 올려도 무방할 것입니다. 결국 어떤 공동체의'문화'는 사소해보이는 반복적인 행동에 '운영철학'을 드러내게 마련인데, 주일사역보고서나 캠퍼스 전도 보고서가 메인 게시판을 장악하는 현상은 결국 여전히 '보여지는 경쟁'에 최대의 가치를 두고 진장님, 간사님,리더와 팀원들에게 '도전'이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압박'을 하려 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더이상 숫자로 교회의 가치, 헌신의 가치를 평가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도 왜 여전히 과거의 문화 그대로 게시판이 운영되는지 알수가 없네요.
이 게시판 제목이 '삼일Talk'인데 진솔한 대화는 사라지고 일방적인 보고서만 난무하는 게시판의 운영의 룰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구요. 무엇보다 노골적으로 상대를 인신공격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 어떤 교인들의 의견이나 아이디어, 건의사항, 제안 등도 무시되지 않고 투명하고 오픈된 방식으로 운영하는 운영의 묘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도 캡쳐한 이미지를 보여드렸지만 우리 교회뿐 아니라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교인들의 의견이나 원활한 소통이 없어서 오해와 갈등, 불신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시점에 삼일교회는 좀 더 다른 문화를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솔직히 이 게시판에 이렇게 글을 쓰기 위해서는 저부터도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데, 그런 용기 없이도 가볍게 여러가지를 묻고 답하고 때로는 농담과 유머글도 올리고, 불만사항도 올리는 '소통의 공간'으로서 교회게시판을 활용해 보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 주시기를 건의합니다. 대부분 진장님, 간사님, 리더님 들은 알아서 '자기 검열'을 하며 진솔한 교회에 대한 의견과 안건은 속으로만 삭히다가 불만이 쌓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거대한 벽을 느끼고는 교회를 떠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와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셋째는,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많은 한국교회의 교인들이나 목사님들은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은 무조건 담임목사님 말이나 교회지도자들의 말에 일사불란하게 아무런 토씨하나 달지 않고 순종하는 것이 교회가 하나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 합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교회 목사님들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화가 잉태한 것이 결국 지금의 부패하고 변질된 대형교회의 모습입니다. 다수의 목소리를 외면한 중앙집중화된 한사람의 권력과 리더십으로만 조직이 운영되는 것은 '교회'공동체뿐 아니라 어떤 조직이든 '부패와 변질'을 가장 빠르게 가져온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기에 교회가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춰나갈때 '장로제도' ,'제직회', '교회법과 교회정관', 여러가지 의사결정구조에 대한 고민들이 역사적으로 나오게 된 배경입니다. 이런 제도만 봐도 교회가 하나된다는 것은 '소통이 없는 일방향적인 의사결정'이 아니라 '건강한 소통'에 기반한 문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 순진한 많은 성도들과 목사님들은 '교회는 민주주의가 아니다'라는 말로 '오직 담임목사님'이나 '교회 지도자'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생각하에 알아서 자기 생각이나 의견을 숨기는 '자기검열'의 문화와 또는 다른 어떤 소수의 의견들도 듣지 않고 묵살하는 '일방향적' 리더십이 어느새 교회문화의 대표적인 특징이 되어버렸습니다.
적어도 '젊은 교회 삼일교회'는 이런 문화를 서서히 바꾸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이번에 A관 건축 문제에 있어서도 절차적인 부분에 여러가지 아쉬움이 있었는데 뒤늦게나마 당회장로님들과 목사님께서 여러 성도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밝혀주셔서 참 감사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교회는 '효율을 위해 다수의 의견으로 소수의 의견을 묵살'할 때 부터 '교회의 본질'이 '부패'하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그 덩치에 상관없이 가장 작은 자의 목소리, 가장 약한 자의 목소리가 존중되며, 효율과 승패라는 결과보다는 '옳고 바른 과정'을 더 소중한 가치로 여기며 더디더라도 묵묵히 걸어나가는 모습을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광야에서 받은 시험중 두번째 시험~마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예수님보고 성전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시험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메시아로서 단번에 너의 능력을 보여주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효율적으로 너를 홍보하라'라는 시험으로도 읽힐 수 있다고 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단호히 거절하시며, 결국 이스라엘의 변방부터 험하고 더딘 여정을 걸어가셨습니다. 저는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절차적 정당성'과 '더디고 험한 과정'을 소중히 여기기보다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거룩한 목표를 내세우고 '승리주의와 번영의 복음'과 '효율'이라는 미명하에 좀 더 빠른 지름길로 가고자 하는 유혹에 넘어가면서부터 이런 교회와 교인의 타락이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다른 교회는 몰라도 제가 사랑하는 삼일교회는 '하나님 나라 확장'이라는 거대 명분으로 '빠른 승리'와 '빠른 성공', '옳음보다는 효율'을 추구하기보다는, 더디고 오래 걸리고, 결과적으로 패배할 것을 뻔히 알더라도 약하고 작은 성도들의 가녀린 목소리도 들을 줄알고, 소통하고, 설득하고, 약자의 의견을 묵살하지 않고, 남들이 가지 않는 어리석으리만치 우직하고 바른 길, 약해지는 길, 낮아지는 길을 가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죽기까지 낮아지며 작아질수록 그 영향력이 커지는 역설의 신비를 예수님의 삶이 보여주었듯이요.
부족한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삼일교회가 한국교회에 더욱 성숙하고 아름다운 모델이 되길 바라며, 오랫동안 생각해온 부분들을 이번 기회에 나누어 보았습니다.
교회를 위해 밤낮없이 수고하시는 송태근 목사님을 비롯한 모든 성도들의 아름다운 헌신과 희생이 무너져가는 한국교회에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는 선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