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오랫만에 넘어졌습니다.1월 1일이었습니다. (새해 첫날)
그 사고 순간을 복기해 보면,사고가 어느 부분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알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순간이 똑같이 다시 온다해도 제대로 대처할 자신은 도무지 없습니다.
사고란-
순간 ,
찾아오지요.
집 거실에서 소파에 앉으려는데 몸이 중심을 잃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때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지면 되는데, 나름 수를 씁니다. 그리고 그 수는 언제나 화를 가져옵니다.
넘어지는 순간 왼쪽 무릎을 바닥에 꿇었습니다....
그것이 화였습니다. 장미란 선수만큼의 체중이 그 무릎에 얼마나 충격을 주었을까요.
무릎을 굽히기가 괴로울 정도로 극심한 통증이 왔습니다.
한발도 걸을 수 없음은 말할 것도 없지요.
이럴때 저의 주치의 처럼 역할을 하는 고등학교 동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는 정형외과 전문의입니다. 그가 피부과나 이비인후과 의사가 아니란게 참 행운이지요.(하나님은 만세전에 저를 위하여 이렇게 세심하게 저에 맞는 주치의까지 다 예비해놓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어떻게 해야돼? 병원가?
부었냐?아니, 그런데 무지하게 아퍼.
얼음 찜질하고 그냥 있어.
환자가 와야 돈버는 의사가 병원에 오지 말라는데 제가 병원에 갈 이유가 없지요. 사실 병원에 가려고 해도 쉽지가 않습니다.
차를 운전할 수도 없고, 운전해서 간다해도 이동이 쉽지가 않습니다. 119구급대를 요청해도 만만치가 않습니다(위경련이 나서 한번 이용해 봤는데, 거주지인 김포의 종합병원 응급실가기와 가서의 치료... 이동의 불편은 말할 것도 없고 신뢰가 쉽게 가지 않았습니다.)
같이 사는 60넘은 큰 누님이 큰 고생을 하셨습니다.
운전을 못하니 장애인 콜 택시를 불러서 함께 출근을 해서 퇴근때까지 옆에서 보살펴 주었습니다. (같이 살면서 살림해주고 , 걸음마도 못하는 이 동생 목욕시키고 온갖 수고해 주시는 누님! 고맙습니다.)
화장실 가는 수고를 아끼려고, 아예 성인용 기저귀를 하고 가서 오전 오후 한번씩 교체를 하였습니다.
참으로 힘들고 불편하였습니다.
사고후 열흘이 지났고,
이제는 한 두발씩 떼게 되었습니다.오늘은 처음 운전을 해서 예배를 보고 왔습니다.
제가 의학적으로 한 것은 없습니다. 얼음찜질과 소염용 연고를 발라준 것 뿐. 그런데 낫고 있는 것입니다.
자연치유? 사람에게는 자생력이 있다?
아니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치료해 주셨다 믿쉽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베드로전서 2장 24절)
어차피 삶이란 방점찍기 아닐까요?
살면서 경험하는 것들에 스스로 의미 부여하고, 그 의미에 따라 다음 행동하기..,,
이 치유를 자연치유라고 생각하면 반복성과 감사대상의 존재유무에 문제가 생깁니다. 자연적으로 나았다하면 다른 위험을 당했을때 다시 치유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될때도 있고 안될때도 있겠지요. 삶에서의 규칙성이 없어지는 것입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언제나 동일하시기때문에 동일하게 치유를 해주시는 반복성이 존재합니다.
또 자연치유되었다고 하면 어디에 감사를 하겠습니까? 땅에다? 하늘에다? 살고 있는 아파트에다?
감사대상이 명확하게 존재하는 것은 격랑이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얼마나 든든한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