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작!, ( 1300만의 질책을 감당하며, 억지로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말한다면) 졸작!
명량 첫씬에서 이순신은 군복(갑옷)을 입고 나온다.
명량 마지막씬에서 이순신은 군복(갑옷)을 입고 나온다.
첫씬부터 큰 씬까지 전쟁만 있다는 의미다.
변화가 없는 단조로움이 가득하다는 의미다.
밤씬은 왜 그리 길게 유지되며 많은지... 영화에 변화가 없다는 의미다.
이순신의 리더쉽? 없다!-이순신의 리더십 때문에 영화를 보게한다는 분석이 허구라는 의미다. 소위 캐릭터가 없다는 의미다.
싸움씬이 허접하기 짝이 없다.-개싸움 수준이다. 전쟁에 작전이 보이지 않는다. 영화에 작전이 없다는 의미다.
(일본 사무라이 영화를 보면, 참 멋이 있다. 깃발을 날리며 달리는 말탄 모습에서 후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햐, 우리 선조들이 정말 멋있게 싸웠구나.’
우리 관군의 싸움을 보면 그저 엉겨 뒹구는 개싸움 수준이다.)
명량도 그 수준이다.
그런데도 왜 관객이 몰릴까?
바로 한 방 때문이다. 배 12척 가지고 100척이 넘는 왜군을
물리쳤다는데 그것 하나 보려고, 그 앞의 지루함을 기꺼이 참는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명량 해전 자체에도 작전은 보이
지 않는다. 그저 물길이 역류하면서 왜군 배를 혼란에 빠뜨렸
다는 것인데,그것 또한 설정으로 나올뿐 화면에 보이지 않는
다.)
명량을 보면서 흥행이유를 생각하다가
하나님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들은 <마라나타(=주예수여 오시옵소서)>를 기대하며 오늘
을 산다. 즉 그들은 오늘에 속해 있으면서도 미래에 산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10절)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로마서 8장 18절)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고,
영화는 영화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
명량을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재미있던가요?”
재미가 다 인가요? 라는 사람에게는 다시 이렇게 묻는다.
"의미는 있던가요?"
예배를 보고 나온 사람들에게 묻는다.
" 주님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까?"
"하나님 나라가 이땅에 올것을 믿습니까?"
(나는 그들의 답을 알고 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