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배반 / 마26:47-75 |
2022.3.27. |
맞이하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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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가장 힘들었던 일 한 가지와 가장
감사했던 일 한 가지를 나누어봅시다.
* 지난 주 함께 기도한 제목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셨는지 나누어 봅시다.
말씀요약 |
* 설교본문과 설교요약을 읽습니다. (bit.ly/31moim)
은혜 나누기 |
* 말씀을 들으며 가장 와 닿았던 내용이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말씀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것, 감사하게 된 것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침묵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깨달은 점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베드로의 실패가 우리에게 소망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함께 기도하기 |
* 오늘 나눈 말씀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을 의지해서 도전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예상되는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이번 한 주 어떤 삶을 기대하십니까? 구체적인 기도제목 한 가지를 나누고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 공동체를 위한 기도제목들을 공유하며 기도합시다.
베드로의 배반 / 마26:47-75 |
2022.3.27. |
들어가며
배반의 밤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열둘 중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많은 무리들과 함께 예수님을 잡으러 나왔습니다. 예수님 곁에 있던 제자는 끝까지 자신의 결기를 드러내며 예수님과 다른 길로 향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를 꾸짖으시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성경에 예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무기력하게 죄인들의 손에 넘겨지셨습니다.
1. 침묵하시는 예수님
체포되신 예수님은 한 밤 중에 산헤드린 공회로부터 심문을 받으십니다. 이 심문은 이른 아침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정죄하기 위한 증거를 찾아 나섰습니다. 여러 거짓 등인들이 등장하였지만 적절한 증언이 확보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께서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로 사흘 동안에 지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을 들었다는 두 증인이 나타났습니다. 대제사장은 이 증언을 바탕으로 예수님은 계속하여 추궁하였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그려내는 공회에서의 예수님의 모습은 한 마디로 ‘침묵’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이 형성하고 있던 언어와 개념의 틀로는 이해될 수 없는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거짓 증인들의 고발과 대제사장의 집요한 추궁에도 예수님은 몇 마디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모인 이들 앞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곡해될 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사53:7). 사람의 비방과 조롱을 받으시고 수치와 모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은 잠잠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며 의지하셨습니다.
2. 통곡하는 베드로
마태복음의 시선은 다시 바깥으로 옮겨집니다. 여기서는 또 다른 갈릴리 사람 베드로가 사람들의 추궁을 받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추궁이 집요해져 갈수록 그는 더욱더 격렬히 예수님을 부인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네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라고 베드로를 압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사실을 격렬히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죽기까지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는 결의와 약속은 사람들의 거듭되는 추궁 앞에 다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 추궁에 이르렀을 때, 베드로는 급기야 저주하며 맹세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침묵하시는 동안, 베드로는 많은 말들로 그를 변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닭이 울었습니다. 누가복음은 이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돌이켜 바라보셨다고 기록합니다(눅22:26). 베드로는 닭 울기 전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시던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자신만만했던 맹세는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결국 베드로의 배반은 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셔야만 했는가를 넌지시 드러냅니다. 인간은 스스로의 약속도 지킬 수 있을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결코 예수님과 함께 하지도, 그분을 멀찍이서도 따르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러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인간의 모든 연약함과 허물을 끌어 안으셔야 했습니다. 신의를 저버린 베드로가 당했어야 할 수치와 모욕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시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을 대신하셨습니다. 오직 이 사실만이 무력한 인간이 모든 절망 가운데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소망입니다.